댈러스 공항의 기다림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달라스에서 탄 비행기는 불과 2시간 남짓 해서 마이애미에 도착을 했다. 옆에 노부부가 출발 직전까지 내내 카드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해서 성가셨지만 '인내'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여전히 내 마음이 울컥대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멀어도 한참 멀은 셈이다. 마이애미에서 대기한 시간은 1시간 정도. 안타깝게도 마이애미에는 무료 와이파이가 없고 신용카드로 30분이나 1시간씩 결제할 수 있는 유료 와이파이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동양인의 수가 줄어든 게 눈에 띄였다. 하지만 간간이 동양인들이 보였고 대부분은 일본 사람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무슨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나? 미국 사람들이 테러와 같은 류를 두려워한다면 일본 사람들은 건강과 같은 류를 두려워한다는 느낌이다. 이 마지막 국제 공항에서 선물을 사 가려 했는데, 안타깝게도 국내선에서 국제선으로 환승하는 구간에는 면세점이 없었다. 이런… 계산착오다. 가서 신부님들 맛있는 저녁이나 대접해야겠다. 살짝 출출한 감이 있어 뭘 먹을까 둘러보다가 피자를 먹기로 했다. 뭔가 두툼해 보이는 야채피자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는데 앞 손님에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어설픈 영어를 쓰기 시작해서, '저도 스페인어가 나은데요.'라고 했더니 동양인이 스페인어를 다 한다며 신기해한다. 카운터 보고 있는 종업원도 동양인인데 스페인어는 잘 못한다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농을 주고 받았다. 계산을 하는데 카운터의 그 동양인 종업원이 날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이요' 라고 했더니 스페인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되묻는다. '볼리비아에서 일해요.'라고 대답하고 살짝 미소 지어주고 말았다. 피자는 아니나다를까 생각보다 양이 많았고 결국 다 먹지를 못했다. 비행기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는데 내 자리 옆에 방학을 맞아 고향 볼리비아로 돌아가는 21살 여자애와 멕시코 출신이라는 어떤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앉아서 둘이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동양인인지라 당연히 스페인어를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둘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에 알게 된 정보도 두 사람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와서 알게 된 것이지 나는 한 마디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지극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이상은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내가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은 이유가 바로 이 두 사람의 대화가 듣기 싫어도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넉살 좋은 아저씨는 참해 보이는 젊은 처자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자꾸만 해 대었고, 이 아가씨는 살짝 성가셔하는 눈치였는데 심성이 고운지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대꾸를 해 주고 있었다. 곧 저녁식사가 나왔는데 아까 먹은 피자가 속을 불편하게 하고 있어서 받아 놓고는 먹는 시늉만 했다. '신심생활입문' 책을 좀 읽어보았는데 이 책이야말로 초심자들을 위한 책으로 추천할 만한 것이었고, 중간 중간 내용이 어디서 많이 봤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분명히 '영성입문'을 가르치신 분의 강의록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정말 오래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 머릿글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님이 이 책을 쓴 목적은 수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신도의 입장에서 올바른 신심생활을 시작할 지침을 작성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 길을 시작하는 어느 여성을 대상으로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내용들을 서술해 두어서 아마도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는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책이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이미 배운 내용들이라서 수월하게 빨리빨리 지나가는데 갑자기 불을 꺼버린다. 개인용 불을 켰는데 이게 시간 제한이 있는지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동으로 꺼져버려서 아이패드를 꺼내 형에게 얻은 에니메이션과 영화를 보다가 자다가 하고 있는 중에 노트북을 꺼내 글을 적는다. 야간비행 중이라서 창 밖으로 보이는 거라곤 비행기 날개 뿐이다. 이 비행기는 라파스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산타크루즈로 날아가게 된다. 처음 이 곳에 올 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라파스에서 비행기 문을 열면 갑자기 다가오는 기압변화 때문인지 고생을 좀 많이 한다. 한 번은 복통과 현기증이 몰려와서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할 수준이었고, 그 다음번에는 두통이 심하게 왔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현상이 날 기다릴는지… 마지막 남은 난관이다.
이 마지막 여행기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대화에 대해서 살펴보았으면 한다. 사실 이 여행기를 쓰면서 나는 수많은 말을 적었고 때로 그 가운데 '정보'에 해당하는 건 굉장히 실제 삶에 있어서 굉장히 '유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 입담에 따른 잡스러운 소리에 불과하다. 나랑 친분관계가 있는 이들은 그저 흐뭇하게 들어줄 수 있는 정도이고 그게 아니라면 '이딴 소리를 왜 적어놓는거야? 쓸데없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하다. 사실이니까. 이 마지막 여행기를 적으면서 영성적인 이들의 섬세한 시선으로 꼽을 수 있는 내용이라면 첫 부분에 등장하는 '사소한 일에 울컥대는 초라한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한 서술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다 폐기처분해도 아무 상관 없는 내용들이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똑같은 정보를 전해줄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몰라도 이런 정보들은 실제적인 삶 속에서 다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다.
우리는 '영적인 사정'에 민감해야 한다. 이 여행기처럼 우리의 삶도 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4시간을 살아가면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활동을 한다. 몸을 가꾸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근본적인 의미를 선사할 '영적인 반성'이 뒤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우리의 일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뿐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현재'라는 시간을 선물한 것은 우리더러 이 일상 안에서 '보화'를 캐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밥을 한 끼 먹더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먹어야 하며, 일을 해도 하느님과 더불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허황한 시간을 보낼 뿐이다. 결국 우리가 간직한 이 육신과 우리가 머릿속에 담아둔 정보라는 것은 하느님 앞에 녹아 없어질 뿐이고, 다만 우리의 영혼의 품만 남아서 우리가 되어준 그 되로 되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하며 살자, 영에 민감한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하자. 사실 내가 글을 남기는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감각을 깨우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처음에는 솔직히 사람들의 관심이 그립고 좋았지만, 차츰 그런 관심들과 찬사가 나에게 전혀 합당하지 않은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는 다른 이가 평가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과 나만이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의 놀이에서 벗어난 우리들은 좀처럼 합당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은 그 시절의 놀이를 되풀이하지는 않는다.(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같이 놀아다라고 한다면 모를까…) 우리가 흐릿하게 보던 것을 점점 더 맑게 보게 될 것이고, 전에는 즐기던 것이 점점 맛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작업에는 여러분들의 의지와 노력도 몫을 차지하고 중요하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 오지만, 그 구원의 씨앗을 심을 밭을 갈고 가꾸는 건 우리의 몫인 셈이다. 자연은 위대해서 굳이 밭이 아니라도 싹을 틔우긴 하지만 잘 갈아서 준비된 밭에 주인이 씨앗을 뿌린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밭을 갈아 두어야 한다. 그러자고 기도를 하고 그러자고 단식을 하고 그러자고 애덕을 실천하는 셈이다. 우리 모두 하느님이 주신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영혼의 밭을 잘 가꾸도록 노력해 나갔으면 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저는 잘 도착할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
갑자기 문득 생각이 난다…
난 풀빵도 못 먹었고,
튀김도 못 사 먹었다…
엉엉 ㅠㅠ
신심 서적 읽으면 천상을 날아갈 것 같다가도
돌아서서 이런 하찮은 쾌락을 아쉬워하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뭔가 싶다.
집에 들어가면 짜파게티 끓여 먹어야겠다.
밥에 참치도 하나 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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