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1주 목요일
두 가지 사물 가운데 더 나은 것을 분별해 내는 우리들입니다.
돈에 관해서는 더욱 쉽습니다.
1000달러와 1000볼리비아노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더 가치가 높은 1000달러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더 좋은 것을 찾습니다.
더 큰 집, 더 나은 음식, 더 멋진 옷들을 찾는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돈과 사랑, 또는 돈과 신앙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사랑'을 선택할 것입니다.
아마 눈치가 보여서라도 그렇게 선택을 하겠지요.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 선택하는 것은 '돈'인 경우가 많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사랑이나 신앙 따위는
일단 입에 밥을 넣고서야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축복'에 관한 개념이 서로 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진정한 축복은
단순히 세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더 넓은 집에 사는 것으로, 더 나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더 멋진 옷을 입는 것으로
사람이 진정 행복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때로는 더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더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그에 상응하는 탐욕도 커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더 나은 것'을 주시려 하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인내'를 선물하시려고
'인내를 훈련할 상황'을 주시려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미약한 마음으로 청한 것은 '안락'이었는데 어느날 그 안락함이 몽땅 사라진다면
우리는 도리어 하느님께 화를 내지 않을까요?
우리 가족이 막연히 '잘 되기를' 바랬는데
갑자기 누군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반신불수가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바라는 세상적인 축복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정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 전환을 두고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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