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서 버드 와이저 맥주 하나에 나초를 시켜놓고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 지켜보고 있다.
참 인간군상이 다양하다는 느낌이다.
뚱뚱한 사람,
코가 큰 사람,
머리숱이 부족한 사람,
허약해 보이는 사람,
살짝 나이가 들어 얼굴이 주름진 아줌마,
귀여운 꼬마아이,
뚱 하게 생긴 아저씨…
그 중에 내 모습도 있겠지.
나는 어떤 모습일까?
공항 화장실 거울에서 마주한 내 모습은
그야말로 초라했는데…
살짝 날카롭게 생긴 나이 좀 있어 보이는 키 작은 동양인…
사람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 겉으로 보이는 다양한 모습의 내면에
하느님은 사람마다 새로운 형상을 지어 놓으셨으니
바로 우리 영혼의 됨됨이이다.
참으로 다행인 건, 이건 숨길 수가 있다.
물론 사람들은 제 외모도 숨기려고 기를 쓴다.
여자는 화장을 남자는 운동을…
저마다 칠하고 불려서는
제 눈에 왜소해 보이는 스스로를 어떻게든 꾸며 보려고 한다.
성녀 데레사는 '현세에서 인정받고 안락을 추구하는 영혼'을 한탄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그런 헛된 이상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찬사든 비난이든
사람들은 저마다 제멋대로이다.
오늘 나의 적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나를 칭찬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나를 그렇게 칭송하던 이들이
다음날 내가 미워 죽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안락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만 봐도 이 땅에서 쉰다는 건 망상이다.
정말 양심이 무뎌져서 그 어떤 것에도 별반 느낌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어딜 가든지 당신은 당신 앞에 놓인 영적인 도전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지극히 세심하게 보살피셔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사실 변명할 말이 없다.
빛을 어둠이라 할 수 없고 어둠을 빛이라 할 수 없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빛'을 비추셨고,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한 셈이다.
이제 볼리비아에 돌아가면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다짐을 새로이 하는 중이다.
사람이 제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쓰인다는 게 중요한 거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굴지의 대기업에 높은 지위에 매달 월급만 수백만원을 벌어들인다 해도
제 역할을 못하는 인간은 불행하고,
반대로 길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일당을 받는다 해도
성심 성의껏 만족하며 일한다면 그는 행복하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절대로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오히려 '충실과 불충실'에 있으며,
그 행복의 수준 또한 다양하니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충실해야 한다.
이러면 꼭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하느님의 뜻'이 뭐냐고…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사실은 이렇게 묻는 셈이다.
'이봐 나는 세상의 중심이야 나에겐 내가 엄청 중요한 사람인데,
분명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특별히 마련하신 게 있을 게 아냐,
그게 도대체 뭐냐고?'
요즘 히어로물이 자주 나와서
사람들이 전부 주인공병에 걸렸다.
내 생각부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이 병에서 헤어나질 못하며
세상을 나 중심으로 편성하려 들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뭔지 이미 알고 있다.
예수님은 누차 그것을 말씀하셨고,
우리는 교회에서 성경에서 그걸 들었다.
'하느님을 내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그 뿐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여러분들이 찾아야 한다.
콧구멍까지 다 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답을 아는데 그걸 실천하기 싫을 뿐이다.
지금 반목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따스하게 인사를 해 주어야 하는 걸 아는데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러기 싫을 뿐이다.
뜨끔한 사람 많을걸? ㅎㅎㅎ
그 동안 페이스북에 댓글을 남겼는데
왜 이 사람이 답이 없나 궁금하신 분들 있을 것 같다.
내가 잠시 떠난다고 한 그날부터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블로그에서 '공유하기'로 페이스북에 전송할 뿐이니까
저에게서 무슨 반응을 기대하지 않으시기를… ㅎㅎㅎ
두 잔째는 생맥주를 시켰다.
이거 마시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좀 자야겠다.
단단하던 위가 좀 풀어진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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