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대전 앞으로 갔을 적에
필히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동등한 존재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실 것이다.
눈 먼 장님에게 색을 얼마나 잘 구분하는지를 묻지도 않으실 것이요
벙어리에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어보라 하지도 않으실 것이며
귀머거리에게 이 소리와 저 소리를 구분해 내라 하지도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 존재로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건 과연 무엇일까?
모든 이가 각자의 자리에서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과연 무엇일까?
세상은 그것을 '물적 가치'로 규정해 버렸다.
물적 손해가 많으면 큰 일에 속하고,
소소하게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건 그냥 에피소드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사람마저 숫자로 헤아려졌고
큰 사건과 작은 사건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는가가 되어 버리고 만다.
마귀들린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돼지떼에게 마귀가 들어가도록 해서 모두 달음질쳐 물에 빠져 죽도록 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마을에서 물러가 달라고 청한 이유이다.
경제성의 논리에서 모든 것이 비교되고 '우월'이 가려지게 되었다.
배우고 돈을 많이 벌면 능력이 있는 부지런하고 좋은 사람,
못 배우고 돈을 벌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게으르고 나쁜 사람,
이 참으로 간단한 이분법은 온갖 매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우리에게 전염되어
우리는 이런 시선을 아주 기본적으로 갖추게 되었고
은연중에 주변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수많은 이들이 서로 출발선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적어도 부모님이 계시고, 기본적인 초중고등 교육을 받고, 4년제 대학이 널린 곳에서 살고
다른 누군가는 부모가 이혼하여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극빈의 경제적 여건에 대학은 그저 상상속의 동물과 같은 존재인 곳에서 산다.
누가 누구를 무엇으로 판단하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일까?
정 반대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울 것이며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될 것이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그 영화같은 광경 속에서
재화, 권력, 명예와 같은 가치들은 무색해 질 것이고
오직 하나,
'나는 사랑했던가?'라는 질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내뱉은 모든 말, 내가 행한 모든 행동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재어보게 될 것이다.
므네 므네 드켈…
두려워하라 내 영혼아…
네 사랑의 부족함에.
너는 어찌하여 그리 이기적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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