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교회의 이상향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교회의 과거에 지녔던 영화로움은 과연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청사진을 지니고 어떤 방향으로 가려 하는 것일까요?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 현대의 시대에 우리가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같은 짐을 들고 이리 당기고 저리 당기면 결국 이 방향도 저 방향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기다리는 교회의 발전상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요?
세상이 가톨릭 세례를 받은 신자들로 뒤덮이면 우리의 사명은 끝나는 것일까요?
아니 적어도 그 수가 많이지면 되는 것일까요?
더 많은 성사자의 수로 교회의 현재를 분별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이 숫자 헤아리기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워만 있을 때가 있고
기어다닐 때가 있고
걸어다닐 때가 있으며
몸집이 커질 때가 있고
지식을 습득할 때가 있으며
나아가 지혜를 익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동안 교회는 참으로 많이 성장했습니다.
이 성장은 아이의 몸이 자라고 지식이 늘어나는 것에 비길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고 이제는 전혀 다른 차원에 보다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것을 영적 성장이라고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몸을 부풀리기보다는 영혼을 보살펴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물론 아직 세계 각국에 몸이 더 성장해야 하는 초라한 모습의 교회,
여전히 재정적으로 가장 기초적인 생활 필수품도 제공받지 못하는 가난한 교회와
인간의 기본적인 권한이 제한받는 국가가 있어 그들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이 마련되어 있는 교회에서는 더 이상 몸의 성장이 아닌
영혼의 성장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인구조사를 하듯이 교회 신자의 숫자를 파악하고 헤아리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좀 더 진솔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1000개의 음식을 허망하게 뿌리기보다
잘 준비된 10개의 음식을 사랑을 담아 건네는 것이 더 효과적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이 길을 누가 이끌어 줄까요?
우리는 누구를 믿고 누구의 뒤를 따라가야 하나요?
예수님은 참으로 단순하게 당신의 비전을 제시하셨는데
지금의 교회는 왜 이렇게도 복잡하게 느껴질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마음을 모으며
이 흩어진 마음들을 모아 전체 교회를 하느님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해결책은 이미 오래전에 제시되었으니
그것은 '사랑' 뿐입니다.
갈라진 것을 하나로 묶고 바로 세우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사랑' 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에 주의해야 할 것이
이 사랑이 그저 네가 좋네 내가 좋네 하는 피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원수를 껴안을 준비를 갖추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때에
분명히 세상은 조금씩 변화되며
결국에는 온전히 하나가 될 것입니다.
저는 누구 탓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제가 아는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 그 사랑을 살아야 하겠지요.
여전히 성정이 곧지 못해서 곧잘 분노하기도 하고
곧잘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그날 그날 다시 반성을 하고 다시 힘을 내어 앞으로 걸어나가려 합니다.
주님의 작은 도구가 되기 위해서
오늘도 저의 마음을 주님께 봉헌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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