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은 2시간 남짓, 별 무리 없이 일본에 도착했다. 순항으로 오히려 30분 더 일찍 도착했다고 한다. 일본은 참 아기자기한 나라이다. 그저 편의점만 가만히 봐도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널려있고, 창 밖으로 보이는 차들도 모두 아기자기하다. 비행 내내 성녀 데레사의 소품집을 읽었다. 성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저술을 목적으로 쓴 글들이 아니라서 두서없어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의미심장한 내용들이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을 해서 국제선 환승구역으로 멋모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안내양이 와서 내가 기다릴 곳은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그 수많은 군중 속에서 나를 어떻게 알아본건지 모르겠다. 여행내내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드릴 수 있는 작은 부분이다. 안내에 따라 지상철을 타고 본관 건물로 와서 아메리카 에어라인 항공사에 와서 다시 티켓을 발급받았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공항 면세품 점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아직 공항들이 많이 남았고 하니 작은 선물들은 마지막 목적지에서 사도 충분할 것 같다. 전에는 전자제품이나 향수 코너가 궁금했지만 이제 그닥 마음이 끌리지 않는 걸 보니 뭐가 좀 변한 듯도 싶지만, 여전히 화려한 광고판에 눈이 가는 걸 보니 여전히 본성이라는 놈은 죽지 않은 모양이다. 유독 어느 가방 가게의 '미란다 커'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초컬릿을 좀 사먹을까 하다가, 그냥 비행기에서 주는 거나 착실히 받아먹자고 다짐을 했다. 그냥 이런 면세품이 넘쳐나는 곳에서 이도 저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이 현대인 고유의 불안증을 나 역시도 온전히 떨치지 못한 모양이다. 속이 더부룩하다. 일본에 오는 길에 주는 샌드위치와 사과주스, 커피 한 잔을 먹었는데 모쪼록 이상이 없길 바랄 뿐이다. 일본까지의 여행길은 그래도 장난이다. 이제 미국까지의 장기간 여행은 어느정도 각오를 다져야 할 듯 싶다. 그나마 일본도 무료 와이파이가 있으니 크게 무료하지 않아서 좋다. 여전히 하느님은 이 여행길이 크게 불편하지 않게 소소하게 챙겨주시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이리라 생각하고 은인들의 영이 하느님 안에 머물기를 기원한다. 곧 티켓팅이 시작된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건, 화장실을 다녀오는 거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생긴 팁이 몇 가지 있는데, 일단 주머니를 깨끗이 비우고 오직 여권과 항공권을 금방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둘 것. 비행기 안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손으로 들고가는 짐은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읽을 책이나 한 권 들고 갈 것(물론 귀중품은 손가방에 넣어 들고가야 한다), 검색대에서는 노트북을 꺼내라고 주의를 주니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순순히 꺼내 놓을 것. 몸에 붙은 금속 장신구는 검색대 들어가기 전에 미리 벗어서 가방 작은 주머니에 넣어둘 것,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륙과 착륙시기에는 항상 금지되고 괜히 승무원과 쓸데없이 성가신 일을 겪을 수 있으니 일단은 여행 초반과 후반을 위해서 책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창가에 앉으면 추울 수도 있으니 가벼운 점퍼를 입되 멀리 갈 때에는 늘 이불을 지급하므로 지나치게 두꺼운 옷은 삼가한다. 가방은 발 밑에 두는 것이 그때 그때의 필요를 위해 편리하다. 늘 펜을 하나 정도 준비해서 언제라도 쉽게 꺼낼 수 있는 곳에 두고 입국서류나 세관 보고서 같은 건 받자마자 미리미리 적어두는 게 좋다. 아따… 길다. ㅋ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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