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의 혼인법은 복잡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혼인 관계에 문제가 있는 부부는 정말 자신들의 열성이 있지 않은 다음에는
그냥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교회혼을 했다가 이런 저런 문제로 갈라서서는
서로 다른 짝을 만나서 다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교회를 찾아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먼저는 "주임 신부님 만나기"라는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교회 안에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 주임 신부님의 방을 두드리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요?
따로 근무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면 괜히 바쁘신 분을 성가시게 하는 것 같아 죄스럽고
사무실에 문의를 하면 지금은 곤란하다는 말 뿐입니다.
주임 신부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더 가관입니다.
간단한 혼인 문제라 할지라도 이런 저런 요구사항들이 줄줄이고
때로는 마음도 없는 전남편에게 전화도 해야 합니다.
헌데 문제가 더 복잡한 상황이면
교구청 법원에 가서 이런 저런 데를 찾아가서 소송을 하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신앙생활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어렵사리 찾아온 신자에게
도성과도 같은 '교구청 법원'이라니 마음은 더욱 졸아들기만 하고
전 남편과 처리해야 하는 서류의 양은 더욱 방대해지기만 합니다.
교회로서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경우들을 손쉽게 처리한다면
저마다 혼배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온갖 문제가 있는 가정을 양산할 것이니
아이들이나 주변 인물들과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처리 결과를 엄중하게 관리해서
정말 심각하게 결정한 것인지를 확인하자는 절차입니다.
이러한 절차들을 다 거치고 나면 소위 나름 비교적 '순결한 상태'가 되는 것이니
앞으로의 과정들을 허락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양측이 다 안타까워 보입니다.
이제 겨우 하느님께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겼지만 거대한 벽을 마주한 부부도 안타깝고,
이래 저래 이상한 경우들을 추스리고 관리해야 하는 교회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재로서는 교회가 참으로 많은 실마리를 지니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미약한 한 부부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 꼭 쥔 손을 좀 풀어서
본당 사목자들이 일을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그 모범을 취할 수 있으니
예수님은 '명백한 죄녀'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으시고 쿨하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너를 심판하던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나도 너를 심판하지 않겠다. 평안히 가라.'
예수님은 의인들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오셨고,
그들을 보살피고 돌보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교회의 높으신 분들이 잊지 않는다면,
모르긴 해도 많은 절차들이 더욱 간소화될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 보시오 여기 규정이 있지 않소?'
'네 맞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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