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야 쓸데없는 것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거든요.
비록 일련의 과정 가운데에 우리의 미성숙으로 인해
덜 중요한 것을 통해야 할 시기가 있지만
그것을 이미 통과하고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필시 우리의 미흡함의 결과가 될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꾸준히 가르치신 바가 있다면
'세속'이라 부르는 육의 허망함이고
'영원'에 속한 영의 소중함이었어요.
성경 안에서 이런 여러 구절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8/루카 12,4)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3,6)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육은 오로지 영에 봉사할 때에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육은 소중한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본 위치는 바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훗날 얻게 될 '육신의 부활'에서 우리가 얻는 육신이란
지금 이 물질세상에서 느끼고 감각하는 육이 아니예요.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의 뜻이
'자 그러니 육을 천시하고 무시합시다'라는 것에
강조점이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네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안에서 '영신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하려는 모든 활동 가운데 과연 나의 영혼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라고 하고 싶은 거죠.
외적으로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의 영혼은 전혀 딴판일 수 있거든요.
제 아무리 전례를 거룩하게 준비하는 일에 헌신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교만'을 북돋아 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반대로 세상에서 아무리 천해 보이는 일을 한다고 해도
설령 내가 구두를 닦는다고 해도
그 구두를 닦으려는 신사가 오늘 하루 반짝이는 구두에 기분이 좋게끔
마음을 담고 그 일을 한다면
하느님은 그의 내면을 읽고 그 일 자체를 성화시켜 주신다는 말이기도 해요.
세상에 거룩한 일이 따로있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의 영신의 사정이 우리가 하는 일을 성화시키죠.
사람들은 '해외 선교사'라는 직함 자체로 그를 들어높이려 하고
고생한다고 안타깝게 생각하려 하지만
실제로 그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외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으면서
해외 선교사가 자연스럽게 겪어야 할 마음의 짐을 똑같이 질 수도 있다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이 작업을 잘 한다면
나날이 한 걸음씩 진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주변은 더욱 더 성화되기 시작할 거구요.
결국 그런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이 모인 곳이
다름아닌 '하늘나라'가 되는 셈이죠.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이예요.
<디지털 시대의 성인>
그래야 쓸데없는 것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거든요.
비록 일련의 과정 가운데에 우리의 미성숙으로 인해
덜 중요한 것을 통해야 할 시기가 있지만
그것을 이미 통과하고도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필시 우리의 미흡함의 결과가 될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꾸준히 가르치신 바가 있다면
'세속'이라 부르는 육의 허망함이고
'영원'에 속한 영의 소중함이었어요.
성경 안에서 이런 여러 구절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8/루카 12,4)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요한3,6)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육은 오로지 영에 봉사할 때에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육은 소중한 것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근본 위치는 바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훗날 얻게 될 '육신의 부활'에서 우리가 얻는 육신이란
지금 이 물질세상에서 느끼고 감각하는 육이 아니예요.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의 뜻이
'자 그러니 육을 천시하고 무시합시다'라는 것에
강조점이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이야기하고 싶네요.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안에서 '영신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하려는 모든 활동 가운데 과연 나의 영혼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라고 하고 싶은 거죠.
외적으로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나의 영혼은 전혀 딴판일 수 있거든요.
제 아무리 전례를 거룩하게 준비하는 일에 헌신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교만'을 북돋아 주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반대로 세상에서 아무리 천해 보이는 일을 한다고 해도
설령 내가 구두를 닦는다고 해도
그 구두를 닦으려는 신사가 오늘 하루 반짝이는 구두에 기분이 좋게끔
마음을 담고 그 일을 한다면
하느님은 그의 내면을 읽고 그 일 자체를 성화시켜 주신다는 말이기도 해요.
세상에 거룩한 일이 따로있는 것이 아니예요.
우리의 영신의 사정이 우리가 하는 일을 성화시키죠.
사람들은 '해외 선교사'라는 직함 자체로 그를 들어높이려 하고
고생한다고 안타깝게 생각하려 하지만
실제로 그 역할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해외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으면서
해외 선교사가 자연스럽게 겪어야 할 마음의 짐을 똑같이 질 수도 있다는 말이예요.
여러분이 이 작업을 잘 한다면
나날이 한 걸음씩 진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주변은 더욱 더 성화되기 시작할 거구요.
결국 그런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이 모인 곳이
다름아닌 '하늘나라'가 되는 셈이죠.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이예요.
<디지털 시대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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