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고양이가 자꾸만 쳐들어와서 쥐들을 잡아먹는데 무슨 대책이 없겠느냐고 한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한 쥐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어 놓았다.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요!’ 쥐들이 그 생각을 검토하면서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극구 칭찬을 했다. 모두가 들떠있는 동안 어디선가 이런 의견이 나왔다. ‘그럼 그걸 누가 하지요?’ 순간 모든 쥐들이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회의장에는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어릴 때에 읽은 우화를 다시 떠올려서 제 깜냥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걸 할 사람이 없다는 거지요. 때로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도전들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꺼내 놓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되어 온 고민들이 있습니다. 청소년 숫자의 감소, 새신자 감소, 쉬는 교우 증가, 성소자 감소… 등등의 수많은 고민들이 이미 시작되었고 계속되고 있으며 또 반복되고 있습니다. 넓은 회의장에 앉아서 경청을 하고, 필기를 하고, 토론을 하고 그것을 또 회의록으로 내어놓는 작업을 하지만 문제는 정작 그 구체적인 실천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결단이 부족해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이론화하고 정돈하고 책을 만들 수는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실제로 자신을 바쳐 남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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