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예레 15,19-20)
사람들이 예언자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예언자가 사람들에게 돌아갈 순 없습니다. 그것은 역방향이 되는 것이지요. 예언자가 사람들을 하느님에게 이끌어야 합니다. 바로 이 방향성이 헷갈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엉뚱한 짓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그것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우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람들을 이끌 능력이 없었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나질 않아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야 했다는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의 냄새를 풍기기 위해서, 즉 사제가 신자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 그들과 흥청망청 어울리고 술을 진탕 마셔댄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차로 노래방에 가고 기억까지 가물가물해지면서 그것이 양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그건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자고 할 용기가 없었을 뿐더러, 스스로에게도 세상의 쾌락을 그만두게 할 자신이 없었을 뿐입니다. 한 남편의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화를 낼 만한 행동이면 마땅히 사제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술도 절제해서 즐기면서 마실 줄 알고, 담배는 가급적이면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따르는 예언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를 마치 청동 벽처럼 만들어 그 누구도 그를 이겨내지 못하게 도와 주십니다. 하지만 이 싸움이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싸움은 아닙니다. 영적인 싸움이지요. 영적인 청동 벽을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한 사제가 영적으로 준비되면 그는 인내 속에서 희망을 키워 나가고, 온유와 친절, 기도와 희생, 겸손과 사랑으로 무장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그에게서 흠잡을 거리를 발견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즉 그의 흠없는 삶이 그를 청동 벽처럼 만들어 반대자들의 온갖 비난이 그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