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마태 11,29)
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쉬는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머지 않아 사람들은 무료하다고 난리를 피울 것입니다.
쉰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과연 우리는 언제 이런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수많은 ‘여가 활동’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름으로서는 쉰다는 활동들이지요. 하지만 때로 바로 그 활동 때문에 도리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활동에 얽매여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으면서 도리어 스트레스를 쌓아 가는 것이지요.
사람이 진정으로 쉬려면 영혼이 편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진정한 휴식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영혼은 오직 ‘사랑’ 속에서만 쉴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에 영혼은 비로 휴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찾지 못하기에 자신들이 사랑할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온갖 취미 활동이 생겨난 이유들은 바로 우리가 마음 둘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여러가지 활동들과 만남들 속에서 결국에는 사랑을 찾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휴식’으로 다가오십니다. 즉,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또한 우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정으로 사랑을 내어 드릴 수 있는 분으로서 다가오시는 것이지요. 그분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영혼이 쉴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분을 쉽게 얻어 만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마음 속에 그분을 받아들일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피상적인 것에서 온갖 위로를 찾고 심지어는 사주와 타로에서 마저도 마음 둘 곳을 찾지만 정작 ‘예수님’이라는 실존하는 인격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어리석음이 됩니다. 참된 샘을 놓아두고 청량음료를 마시면서 목이 금새 다시 마른다고 불평하는 꼴이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에게로 다가가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줄 수 있습니다. 육체의 안락과 쾌락 만을 찾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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