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코헬 2,21)
그렇다면 허무와 불행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노력한 것으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얻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사람 치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저마다 자신에게 좋은 것을 남겨 주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런 사람도 바로 자신에게 좋은 것을 남겨두기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스스로에게 주고는 싶은데 문제는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사탕을 좋아하지만 사실 사탕은 적당히 먹지 않으면 전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그 단맛을 즐길 뿐이지요. 누군가가 곁에서 적절한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입에 단 것을 찾아 마구 먹다가 건강을 해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 일이 ‘어른’에게도 일어납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분별과 절제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듯이 어른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좋은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놓으신 것들입니다. 영원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것들을 우리는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당장의 우리 눈에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보다 거부하고 피하려고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십자가’는 좋은 것일까요? 우리는 외적 표지의 십자가,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가 나의 삶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다가올 때에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 십자가가 나의 속을 썩이는 남편이라면, 그 십자가가 나의 시부모라면, 그 십자가가 내가 마땅히 해내야 할 나의 의무라면, 그 십자가가 나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희생이라면? 우리는 적지 않은 십자가를 거부하고 회피하고 살아가는 셈입니다.
잘 생기고 유명한 사람은 좋고 가난하고 냄새나는 사람은 싫고, 좋은 여행지와 안락한 것은 좋고 나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은 싫고…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나쁜 것인지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당장 나의 눈 앞에 좋아 보이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를 쓰고 기를 써서 얻은 것을 결국 다른 이에게 주고 우리는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그래서 코헬렛의 저자는 허무와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허무와 불행을 쫓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을 모으고 쌓으려 하지 말고 영원에 관계되는 것을 모으고 쌓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결국 허무와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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