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4,7-8)
하느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것만큼 단순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을 정의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참여하는 이는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그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이는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지요.
우리는 누군가를 잘 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어느 학교를 다니고, 어디 출신이고, 그의 가족 관계가 어떤지를 아는 것일 뿐, 정작 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도식화하고 통계화해서 수치를 산출해 냅니다. 그러나 한 인간 존재가 수치로 산출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한 인간의 내면은 무한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잘 알려면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 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영혼을 서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만들지요. 무엇보다도 참된 사랑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떠난 채로는 그 어떤 것도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휴머니즘 마저도 하느님과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딘가 구멍뚫린 것이 되고 말지요.
그러나 이 사랑을 숫제 시작도 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가볍디 가벼워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모르지요. 그는 많이 ‘소유’하지만 ‘누리지’는 못합니다. 모든 곳을 여행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지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누구와도 진정한 친구가 되지는 못합니다. 특히나 자신에게서 재력이 사라지고 명예와 권력이 사라질 때에는 그 누구도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외톨이가 되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은 형제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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