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루카 10,2)
하느님은 ‘마음밭’의 주인이시고 예수님은 그 으뜸 일꾼이십니다. 헌데 예수님 혼자로는 역부족이라 고용된 일꾼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바로 마음밭의 일을 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먼저 개념을 잘 잡도록 합시다. 과연 마음을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잘 모르면 마음밭의 일꾼은 커녕 도리어 잡초를 심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들을 모아서 하느님께로 드리기는 커녕 엉뚱한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마음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일까요? 사실 모든 마음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멀리 떨어진 마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은 그쪽으로 방향 지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로 향해 있는 마음들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마음들을 추스려서 다시 모아 하느님께로 돌려 드러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마음들을 하느님께로 돌이킬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성경을 들고 가서 막무가내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대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엉뚱한 성경 해석을 가르치며 종말에 대한 헛된 사상을 불러 일으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그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 엉뚱한 집단들이 있지요.
마음을 하느님에게로 모으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시고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최종적으로 바라십니다. 당신의 힘에 억눌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싫은데 억지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꾼들은 그 ‘사랑’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서 그 사랑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그 빛과 소금의 짠 맛에 이끌려 한 걸음 나아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소위 자칭 일꾼들은 이미 지닌 것을 누리는 데에 헌신할 뿐입니다. 성경의 다음 표현이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에제 34,3) 즉 양떼를 돌보라고 일꾼들을 보냈더니 정작 양 떼를 돌보지는 않고 있는 양 떼들 덕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일꾼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꾼은 있으나 제대로 된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약하고 어린 양들이 생명의 길을 찾게 돕지는 않고 울타리만 잔뜩 높여서 아예 한 번 나가면 들어오지를 못하게 막아 버리고 안에서는 양들의 젖과 털을 뽑아먹고 살진 놈을 잡아먹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확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일꾼은 부족합니다. 교회의 무슨 감투를 써야 일꾼이 된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수많은 이들을 위한 일꾼입니다. 사제는 다만 본당이라는 눈에 명확히 드러나는 범위 안에서 일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인으로서 세상 안에서 우리가 일하는 곳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시작하십시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