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짓된 말을 믿고 있다. 너희는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으로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고, 너희 자신도 모르는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 안에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런 역겨운 짓들이나 하는 주제에! 너희에게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집이 강도들의 소굴로 보이느냐? (예레 7,8-11)
다른 이의 재산을 빼앗는 것도 도둑질이지만 정당하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사실 스스로 별다른 죄악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 죄악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이익을 늘릴 수단을 강구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늘릴 방법을 찾고, 그것을 특히나 가난하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의 몫을 쟁취함으로써 이루곤 합니다.
살인은 단순히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만 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단순히 육신의 생명에만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생명처럼 중요시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서 근거없는 험담을 하는 이도 일종의 살인을 저지르는 셈이지요.
간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부부간의 정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간음은 내적 신실함을 상실하는 것, 즉 하느님을 두고 다른 존재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우리의 헛된 주장들을 뒷받침하고자 헛된 맹세를 하고, 재물의 왕에게 헌신하겠다고 내적으로 다짐을 하며, 우리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신들을 따라가곤 합니다.
그러면서도 주일에는 성당에 와서 우리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믿으며 ‘구원을 받았다’, ‘적어도 죽을 죄는 짓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곤 하지요. 그러면서 지난 주일에 주일 미사 빠진 고해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면서 내적으로 저지른 온갖 불의에 대해서는 스스로 너그러이 용서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용서하는 것이 아니어서 곧잘 다시 같은 어둠의 행위를 반복하곤 하지요.
사실 우리는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도 올바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심리학자들과 유명하다는 박사들의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만, 정작 우리를 인도해 줄 성령의 목소리는 멀리하지요. 증권 브로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는 즐겨 듣지만 자신의 어린 아들이 아빠를 걱정해서 하는 소리는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향은 간단합니다. 바로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볼 생각조차 않으니 과연 우리가 하느님에게 어떻게 하면 다가설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의문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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