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 20,18)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세상에 흠뻑 젖어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냥 세상에 젖은 것이 아니라 죄에 빠져 있었고 거기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지요. 선과 진리와 사랑이신 분을 만났습니다. 물론 모든 단순한 만남이 한 사람을 참된 길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여인은 스스로의 의지를 다해서 그분을 따르고자 노력했고 결국에는 그것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참으로 짧게 적었지만 꽤나 길고 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다시 그분을 잃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그분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분이 돌연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세상이 그분을 증오했고 그분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슬픔에 젖어 듭니다.
그러나 그분이 그녀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녀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분이 그녀를 부르실 때에 그녀는 그분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녀는 ‘목격자’가 되고 또한 ‘증언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난 이들, 영원 안에서 그분을 다시 만난 이들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의 증언자가 됩니다.
이 일련의 사건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역시도 세상에 물들어 있었고, 죄악의 시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참된 길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의지를 더해서 그 길로 나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정상 궤도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시련’이 다가오게 되지요. 다시 예수님을 잃게 됩니다. 물론 이번에는 우리가 잃고 싶어서 잃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상황이 그렇게 조성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참된 방식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선포자’가 되게 됩니다.
사람들이 신앙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한 만남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전할래야 전할 거리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실한 만남을 이룬 사람은 가만히 머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정보를 접하면 그것을 전한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들은 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지요. 세상 정보에는 그렇게 열성인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그분의 흔적들만을 답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생히 살아계신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은 예전의 그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 주변의 가장 약한 이들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