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21-2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으로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이미 형제들은 서로 원수가 되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무너지고 있으며 자녀들도 부모에 대해서 반발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의 본질적인 의미는 단순한 ‘다툼’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는 보다 더 본질적인 의미가 있으니 빛으로 나아가는 방향과 어둠으로 나아가는 방향의 다툼입니다. 즉, 빛은 언제나 빛을 추구하고 다른 이들마저 빛으로 이끄려고 노력하는 반면, 어둠은 자신들끼리 어둠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빛을 어둠으로 이끄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증오를 사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실하고 진실하고 책임감있게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주변의 시기와 증오를 사기 때문입니다. 어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빛을 거부하며 빛 안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을 시기합니다. 이는 마치 어둠 속에 10년을 살아온 사람이 손전등 불빛을 만나 눈이 부셔서 괴로워 죽으려고 하면서 그 손전등을 찾아서 꺼버리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단이며 결심입니다. 그저 한주간을 내 입맛대로 살다가 주말에 미사나 나가면서 의무를 채우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 아니라 매 순간 하느님을 향한 결단을 내리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은 반대자들의 횡포를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어느날 남편이 부정한 방법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할 때에 그 제안을 넙죽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이지요. 어둠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그 길은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우리를 단순히 좋게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때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발에 부딪혀서 용기를 잃으려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미흡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진 순간부터 예수님을 따르려는 작정을 해 왔고, 예수님의 길은 언제나 가시밭이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구역장을 맡았는데 반원들이 따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 따르지 않는 반원들의 마음을 모으고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훗날 우리의 상급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성공을 하는 사람은 없지요.
교리교사 생활을 하면서 부모가 반대하고 자신의 개인 시간을 쪼개서 하는데 정작 얻는 건 없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질책을 당한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교리교사를 한다고 작정하는 것은 그러한 것까지도 포함해서 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단순히 교사 회식을 자주 하고, 소풍과 피정을 자주 가기 위해서 교리교사를 하는 것은 아닌 셈이지요.
힘든 일, 사건, 사람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를 지닐 수 있고 우리의 인내는 우리를 희망으로 이끌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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