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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과 섬김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0,25-26)

말로는 이렇게 쉽게 표현되는 것이 실제로 실천하기는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내면에 이미 일종의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흰 도화지에 색칠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미 물든 종이를 다시 표백하고 그것에 색을 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과연 우리가 서로를 섬기도록 교육을 받았는지 아니면 1등이 되어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도록 교육을 받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최고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최고의 의미를 올바로 곱씹어보지 않은 채로 최고가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하지요. 세상이 말하는 최고는 산의 정상을 의미합니다. 그 꼭대기에 올라서야 최고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서 무의식중에 세뇌를 시키곤 하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는 오직 ‘하느님’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형제이고 자매일 뿐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지요. 자신이 가진 달란트대로 세상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가진 달란트로 남에게 봉사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은 서로를 위해서 헌신합니다. 손은 다른 지체를 위해서, 발도 다른 지체를 위해서, 눈과 코와 입도 모두 다른 지체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몸이지요. 지체 가운데 하나가 다른 것들을 지배하려고 들면 엉뚱한 일이 일어납니다. 눈은 귀로부터 정보를 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보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면 캄캄한 밤에 큰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또 귀와 눈은 코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스가 새는 냄새는 눈으로도 귀로도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한 지체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 우리는 우리의 몸에서 그런 지체를 ‘암세포’라고 부릅니다. 암세포는 실제로 건강한 세포들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혼자서 독식하고 자신의 몸뚱아리를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암세포는 수술을 받고 떼어 내버려지거나, 아니면 전체의 몸을 죽음으로 이끌어가지요.

우리는 서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더러 높이 올라서라고 하고 최고가 되라고 하고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라고 가르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나락에 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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