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마태 12,41)
요나가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 대단하신 분이었지요. 하느님은 요나의 약함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를 니네베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니네베 사람들은 그 말을 들었고 회개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럼 과연 누가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일까요?
선과 정의를 사랑하는 이, 진실과 공정을 실천하는 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은 그들의 삶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들이 맺는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맺는 열매는 기쁨, 사랑, 일치, 평화, 온유, 겸손과 같은 덕목들입니다.
이러한 열매들로 그들을 분별해야 하고, 그렇게 좋은 것들을 지닌 이들이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전하는 이들도 부족할 뿐더러, 듣는 이들에게서도 문제가 발견됩니다.
무엇을 듣고 싶어할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귀에 달디단 말을 듣기를 선호합니다. 욕심이 많은 이에게는 그 욕심을 북돋우는 말이 달콤하게 들리고, 권력과 명예에 물든 사람에게는 그러한 것들을 보장하는 말들이 달콤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텔레비전만 잠시 쳐다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익숙한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 자체가 소음이지만 세상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달콤한 향연으로 들리게 마련이지요.
우리는 과연 올바른 말을 듣고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제대로 듣는다면 올바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올바로 생각한다면 올바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올바로 살고 있지 못하다면 올바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올바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올바로 듣지 않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귀를 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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