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마태 13,43)
우리가 밝게 느끼는 이유는 ‘시신경’을 통해서입니다. 빛이라는 정보는 우리의 눈을 통해서 들어와 뇌로 전달되어 밝고 어두움, 그리고 색깔의 정보를 전해주고 우리는 그것을 해석해서 밝은지 어두운지, 붉은지 푸른지를 분석해 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의 성질을 지닙니다. 밝은 소리가 있고 우중충한 소리가 있지요.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라면 장조가 있고 단조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청음력이 뛰어난 사람은 온갖 다양한 소리들 가운데에서 보다 밝고 아름다운 소리와 보다 어둡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소리를 찾아내고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을 마주하면서 눈과 귀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밝고 맑은 영혼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고 온갖 덕행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가지 가치들을 지니고 있는 영혼이지요. 위의 성경 구절은 바로 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의인들이 해처럼 빛나는 이유는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그러한 가치들에 헌신했고 하느님의 사랑의 빛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중충하고 어두운 영혼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겠지요. 그들의 내면은 이기적이고 폐쇄적이고 탐욕스럽고 기만하고 악의에 가득해서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영혼의 상태는 외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만’과 ‘위선’이 판을 치게 됩니다. 영혼이 우중충한 사람이 외적으로는 화려한 차림새의 옷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고, 또 반대로 영혼이 밝고 맑은 사람이 실제로는 초라한 옷을 입고 다녀서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색은 어떠할까요? 영혼의 색은 ‘삶’으로,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영혼에 아름다운 색을 입혀야 합니다. 겸손하고 기도하는 삶으로, 인내로이 고통을 참아 받고 주변의 온갖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키워나가려는 노력으로 우리의 영혼의 색을 가꾸어야 하지요. 그렇게 보살피고 가꾸면 훗날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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