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마태 13,40-43)
흔히 예수님은 성인 군자라서 아주 자비로운 사람이라고들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을 닮아서 자비롭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을 할 때에 우리가 망각하는 것이 있으니, 예수님은 ‘정의롭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지닐 때가 있습니다. 마당에 나와서 쓰레기를 치우는 본당 신부님의 모습이 있는가 하면, 장엄 미사에서 거룩한 전례를 집전하는 거룩한 대사제의 모습이 있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활동하실 때와, 천상에서 다시 재림하실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마련입니다.
종말의 때는 ‘기회가 다한 때’입니다. 종말이라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더는 기회가 없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모든 것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악하다 하더라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의 악으로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보내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섞여 사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여전히 세상에 악이 득세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만일 하느님께서 원하셨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그 모든 어둠들을 싸잡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지요.
지금은 기회의 시기이고, 우리의 온갖 부족함과 오류가 여전히 기회를 얻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냥 ‘허비’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준비’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동안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