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 (예레 14,17-18)
예언자들의 말은 단순히 그 나라의 외적인 정치적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사람이었고 그들이 걱정하는 바는 인간의 내면에 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바라보시며 울고 계십니다. 타락해가고 망해가는 자식을 보며 부모가 눈물을 흘리듯이 하느님도 당신의 자녀들을 보시며 슬퍼하시는 것이지요. 영적인 타격이 너무나도 커서 그 상처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들이라는 곳은 영토 밖을 말합니다. 수비대의 권한이 미치는 영역 밖을 말하지요. 즉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이방인들, 혹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 있다가 벗어난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상황은 처참합니다. 칼에 맞아 죽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외부 세력의 영향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혼이 회생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머물러 있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손길에서 벗어나 죄악의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이들, 탐욕과 악의가 가득한 가운데 선의를 상실하고 물들어가고 있는 이들을 말하지요.
성읍 안, 즉 교회의 울타리 안이라고 상황이 더 낫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는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 뿐입니다. 올바로 잘 먹지 못해서 굶주려 있고, 병마가 다가왔는데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영혼이 메말라서 뭔가 먹거리를 찾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소화할 만한 것을 주지 못하고, 영적으로 세상사에 물들어가면서 병에 걸려 있는데 그 누구도 거기서 구해줄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예언자와 사제는 바로 성읍 안에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하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도무지 어찌할 줄을 모릅니다. 사실 그들은 좋은 시절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이들이었고 사람들로부터 온갖 좋은 것을 얻어 누리던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해진 이 마당에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알지 못합니다. 바로 그들이 먹이고 치유해야 하는 사람들이건만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하는 것은 그저 나라를 헤메고 다니는 것 뿐입니다. 그들의 발자국은 남지만 그 어떤 업적도 남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어 주는 분명한 예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밖으로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정신에 영혼이 죽어가고 있고, 교회 안에서도 합당한 영적 양식을 전해주지 못해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고, 예언자와 사제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신학적 내용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은 슬퍼하고 계시지요.
하지만 하느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꾼을 보내실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그 일꾼들일지도 모릅니다. 일꾼은 ‘직분’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직분이 있으면 일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요. 일은 일하려는 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하고, 그것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왕국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저희를 내쫓지 마시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옥좌를 멸시하지 마소서. 저희와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예레 14,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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