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창세 18,32)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단 열 명의 의인만 있더라도 도시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지요. 그리고 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악을 보시기 이전에 우리의 선함을 보십니다. ‘희망’을 보시는 것이지요. 만일 우리였다면 아마 퍼센트로 보았을 것입니다. 즉 선인과 악인의 비율이 몇 퍼센트인가를 보고 악인이 더 많으면 그 도시를 멸망시켜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한 나라에 선인, 무죄한 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 정치인들과 정부 고관들이 그릇된 행동을 해서 그 나라가 악한 명성을 얻으면 우리는 그 나라를 쓸어버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흔히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는 그 나라들 안에 선인과 무죄한 이들, 순진 무구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 국익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우리는 한 나라가 재난에 휩쓸려 망하기를 바라곤 합니다.
이는 한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한 인간에게서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우리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한 영혼에 대해서 심판을 내려 버리곤 하지요.
누구에게나 부족함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아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조금 더 나은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스스로 잘나서라기 보다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좋은 것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도시에 단 열 명을 보아서라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느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흠집난 것을 잘라내어 내던져 버리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분이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에서 아주 작은 희망을 키워 큰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더불어 마지막으로 한 마디 첨가하고 싶은 것은, 우리 가운데 있는 의인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혼자 잘난 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의인이 있다는 것은 그 홀로 열심히 순수함을 잘 간직해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의인의 희생으로 나머지 죄인들을 선으로 이끌라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의인들은 희생을 예비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세상 안에서 고통 받게 마련입니다. 이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으로 세상의 빛을 밝혀야 합니다. 그 말은 세상에 어둠이 가득하다는 말이고 우리가 빛을 발할 때마다 어둠이 그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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