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는 작업은
뭔가 엄청난 걸 이루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 잠깐이나마 하느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왜냐면 아직도 세상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미혹되어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라는 것은 순간의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지금껏 신경써오던 왼손의 100원짜리 동전보다
오른손에 지금껏 쥐고 있었던,
지금까지 그 가치를 몰라 거추장스러워하고 버리려고만 했던
백만원짜리 수표의 가치를 일순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일단 알고 깨닫게되면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전까지는 그저 미워하기만 했던,
거추장스러워하기만 했던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새로이 바라보게 되고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나를 구원의 길로 보다 더 가까이 이끌어주는 도구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작업은 그것 뿐입니다.
나머지 일은 스스로 해 나가야 합니다.
사실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의 손아귀 밖에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느님만이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성당에 나오고는 있지만
실제 그들의 마음에는 하느님을 믿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른 목적으로 성당에 나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극히 미미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인간사를 구축해서 거기에 몰두합니다.
성당 안에서 모임은 또다른 인간사의 새로운 국면일 뿐이고
그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도 얼마 없는 젊은 신부가 겁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해 댄다고
속으로 내심 불편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실이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이 쌓은 인간적 전통을 하느님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쌓을 수 있는 무언가 입니다.
그들은 기도도 쌓으려 하고,
경력도 쌓으려 하며,
시간도 쌓아두려 합니다.
뭔가 저장할 수 있고 쌓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쌓고 보관해서는 그렇게 노력해서 구축해 놓은 것을 먹고 즐기려 듭니다.
반면,
참 하느님의 종은 매 순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에게는 쌓이는 것이 없고,
쌓아둘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며,
오직 하나 하느님을 담을 품을 넓히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니 나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쌓은 것이 늘어갈수록 하느님을 위한 자리가 좁아진다는 걸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채워진 것이 없고,
그래서 아이와 같습니다.
쌓아둔 것은 번뇌의 대상이 됩니다.
지식을 쌓았기에 그 쌓은 지식을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하고,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나의 현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건강하려고 기를 쓰는 수많은 사람들,
그러면서도 결국엔 죽어버리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면서도
'웰빙'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생각지 못한 채로
'웰빙'이라는 단어가 붙은 물건과 식료품을 사서는 위에다 집어 넣습니다.
전혀 웰빙(Well Being)하지 않은 모습인데도 그네들에게는 그게 웰빙으로 보이나 봅니다.
사설이 좀 길었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깨닫는 자는 길을 시작합니다.
그 깨달음을 위해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여러분도 이 여정에 동참했으면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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