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에서 11시 1분에 도착해야 할 기차가 한 5분 늦어졌다.
볼리비아에서 15분, 30분을 우습게 기다려온 나였기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우왕좌왕했고
플랫폼에서 관리를 하던 아저씨는
지금 서 있는 기차가 제 시간에 와야 할 기차가 아니니 타지 마시라고 열심히 방송을 했다.
한 승객이 그 아저씨에게 와서 이걸 타면 되느냐고 물었고,
관리 아저씨는 가지고 있는 기차표의 시간을 확인하면 되지 그걸 왜 나에게 물어보느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중년의 승객 아저씨도 성질이 나서
아니 당신들이 똑바로 하면 이런 일이 없지 않느냐며 다시 화를 내었다.
그러더니 결국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세세한 부분까지 나름 잘 짜여져 있어서
하나에서 열까지 톱니바퀴 돌듯이 착착착 진행되어 나가는 중에
그 틈에 끼인 사람들까지도 톱니바퀴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오류'나 '잘못'이 없을 수 없음에도
우리 사회는 어느새 그 범위를 지독히 줄여 버렸다.
예상되는 오류의 한계마저도 정해서 그것을 벗어나면
사정없이 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족하다고 해서 이렇게 잘 짜여진 것을 포기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반대로 짜여진 게 중요하니 부족함 따위는 잊어버려야 한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둘의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사랑'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이 간극을 서로서로 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많다.
갈라진 틈을 메꾸는 최고의 효력을 가진 사랑이라는 윤활유를
하느님으로부터 담뿍 받아와서
사람들 사이의 벌어진 간극에서 빚어지는 마찰을 상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 안에서 그 일을 시작해야 하는 신자들조차
나 좀 도와달라며 사제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좋다, 그걸 아는 사제들이 힘써야지.
'사랑'에 관해서는 하겠다고 나서면 못할 일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불가능이 없다.
사람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간극들,
서로 외롭다고 힘들다고 날 좀 바라봐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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