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1주 금요일)
복음서에서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전하려고 하신 복음,
즉 '기쁜소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잘 다른 것들에 치중을 하며
예수님의 '기쁜 소식'의 본질을 왜곡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 이들 보셨을겁니다.
신앙생활을 하라면서 이런 저런 규정들을 더욱 더 들이대는 사람들,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라고 하면
그 신앙인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본질'보다는
'신자로서의 의무'를 혹시 덜 가르치지 않았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
이들은 '기쁜 소식'을 어둡고 무거운 소식으로 뒤바꾸어 버리는 장본인들입니다.
자, 그럼 신앙의 본질, 즉 예수님이 전하려 했던 기쁜 소식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르코 2,5)
예수님은 갇혀있는 우리들을 풀어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것이 억압이면 거기서 풀어주고,
그것이 현실적인 제약이면 거기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도움을
외로운 이들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물론 이 해방에도 우선순위가 있으니 당연히 그것은
무엇보다도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있는 우리들을
그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당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흠도 티도 없이 씻어주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이 작업이 우선이었습니다.
'죄의 용서', '영혼의 구원', '진정한 해방', '죽음에서의 자유', '부활'
이렇게 똑같은 의미를 지녔지만 여러가지 말로 바뀔 수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고,
여전히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며
옛 삶에로 되돌아가버리고 맙니다.
이 일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천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졌음에도,
여전히 지상의 것을 걱정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존엄성을
너무나 비천하게 여기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갑니다.
우리는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생각하고,
생기발랄한 우리 자신들을 두고, 죽은 사물의 사정을 걱정합니다.
우리 가족이 고통받는데, 그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돈 걱정을 하고,
누구의 마음이 무너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으면서 재물은 중요시합니다.
솔직히 우리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우리의 내면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짐은 가볍고, 멍에는 편안한데,
우리는 스스로 거대한 맷돌에 우리의 목을 내다걸어 버립니다.
돈을 걱정하면서 하느님과 사람과 사랑을 잃어버리고
결국 우리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돈만이 자신의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그걸 얻어보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눈 먼 세대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 글을 읽는 신자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특권을 주셨습니다.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