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오그라들면 뭔가 다른 걸 손에 쥐지 못합니다.
마음이 오그라들면 뭔가 다른 걸 마음에 담지 못합니다.
손이 오그라든 건 육체적인 것이고 육체가 사그라들면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
마음이 오그라든 건 영적인 것이고 영혼이 지속되는 동안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순식간에 치유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그 전능은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 앞에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법과 계명'이라는 전통 앞에서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계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이들은
아직도 '법과 계명'을 내세우며 다른 이들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유가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떤 이유'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습 자체가 바로 우리의 마음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왜냐면 우리 주님이신 하느님은 '사랑' 외에는 다른 걸 가르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잘못을 했다면 물론 고쳐주어야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증오'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더 큰 사랑으로 그를 감싸안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님, 그럼 그 사람이 그런 잘못을 계속하게 두라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이 무턱대고 모든 걸 감싸 안는다면 그것 또한 큰 착각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모님 역시 우리를 사랑하셔서 때로는 우리를 꾸짖으십니다.
사랑이 드러나는 형태는 여러가지이지만,
그 내면의 근본 방향은 '사랑'을 향한 같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훈육'을 핑계로
마음껏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사랑의 탈을 쓴 가식적인 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갈라서려고 하며 자신을 그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이간질 시키고 산산조각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노기를 띠시며 그들을 바라보셨지만,
이내 슬퍼하셨습니다.
오그라든 손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오그라든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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