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주 목요일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렇게 외친 사람은 베드로도 당신의 사랑하던 제자 요한도 아닌
바로 '더러운 영들'이었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들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는 이들,
교리 내용을 소상히 알고, 심지어는 타인에게 충고마저 해 주는
그런 이들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 가운데에는
하느님을 전연 신뢰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부터 의심해야 할까요?
이런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누군가 떠오르며
그 간에 그 사람에게 받은 서러움이 일어나고
그런 감정이 증폭되는 사람은
.
.
.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부터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더러운 영의 특징은 '갈라놓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그를 갈라놓고 이쪽과 저쪽을 갈라 놓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지만
그 영혼이 다시 돌아올 문을 결코 닫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 몸담는다 하면서
곧잘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달콤함을 전하는 듯 하면서
'정당하게 미워할 근거'를 마련해 주는 이들,
거짓된 신심으로 이끄는 이들이 교회 안에 산적해 있습니다.
신앙은 신앙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돈에 관해서는 전혀 신앙적이지 못한 이들,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 역술가들, 타로카드점집에 찾아들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참으로 더러운 영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 자체를 알지를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는 알아서
늘 '두려움' 속에서 그분을 맞이합니다.
어둠에게 있어서 빛은 치명적인 적대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경외와 공포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을 경외하지만 공포를 느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녀들의 영은 나아가 다른 이들을 하느님의 자녀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닮아 전혀 이기적이지 않고
언제나 모든 이를 하느님께로 이끌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화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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