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가나에서 일어난 이 기적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그 남다른 모습이란 다름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의 뜻이 곧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면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놀라움이었겠지요. 예수님은 분명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기적들을 일으키고 있어으리라 생각합니다. 측은한 마음에 누군가를 치유한다거나 하는 일이 비밀리에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다만 이 가나 기적이 중요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의 '공생활', 즉 예수님의 공적인 삶에서 기록된 첫 번째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청을 드릴 당시에 성모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포도주를 사 오던지, 무슨 수를 내어야지 아들에게 가서 그 일을 보고하는 이유는 어머니께서 이미 아들의 그런 능력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었습니다. 원래 시간의 충만함 속에서 계획되었던 하느님의 외아들의 그 시간, 당신이 첫 기적을 일으켜야 할 시간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분별이 그 시간이 여전히 멀었다고 분명하게 인지하고 계셨더라면 이 첫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이 순진무구한 청원은 하느님의 계획을 바꾸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 바뀌어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첫 번째의 공적인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의지는 하느님의 시간과 계획을 바꿉니다. 어제까지 어두움과 우울함과 슬픔에 싸여 있던 사람,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선'을 위해서 쓸 수 없던 이가, 오늘 아침 밝은 햇빛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에게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내세우는 순간부터 세상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이미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지를 더욱더 발휘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가 한탄스럽다면 우리의 뜻을 세워서 하느님께서 나를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첫 삽을 뜨도록 하시고, 나를 통해서 씨앗을 뿌리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다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주의사항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종들에게 지시하신 말이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여 일을 하는 동안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것, 하느님과 하나된 그 분께서 지니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실패를 하며, 결국 자신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맞지 않다고 투덜대기 시작을 하고 자신의 뜻을 찾아 하느님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때로는 우리 이성의 범위를 초월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개미가 눈 앞의 현실에서만 사물을 인지하는데 우리가 위에서 보기에는 다른 더 좋고 유익한 길이 있고 그 개미에게 이리 저리 가도록 길을 지시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보다 넓고 무한하신 시선 속에서 당신은 우리의 삶을 이리로 또 저리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우리의 의지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지를 기꺼이 존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기쁨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봉헌하여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늘 투덜거리면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적합한 위치에서 우리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뜻을 바로 세우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서 걸어 나갑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이에게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멘.
하지만,
사실 그 때는 아직 오지 않았었습니다. 원래 시간의 충만함 속에서 계획되었던 하느님의 외아들의 그 시간, 당신이 첫 기적을 일으켜야 할 시간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분별이 그 시간이 여전히 멀었다고 분명하게 인지하고 계셨더라면 이 첫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이 순진무구한 청원은 하느님의 계획을 바꾸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 바뀌어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첫 번째의 공적인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의지는 하느님의 시간과 계획을 바꿉니다. 어제까지 어두움과 우울함과 슬픔에 싸여 있던 사람, 그래서 자신의 의지를 '선'을 위해서 쓸 수 없던 이가, 오늘 아침 밝은 햇빛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에게 나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내세우는 순간부터 세상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이미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지를 더욱더 발휘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가 한탄스럽다면 우리의 뜻을 세워서 하느님께서 나를 쓰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첫 삽을 뜨도록 하시고, 나를 통해서 씨앗을 뿌리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다만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주의사항입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종들에게 지시하신 말이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여 일을 하는 동안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고 바라시는 것, 하느님과 하나된 그 분께서 지니신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이들이 실패를 하며, 결국 자신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맞지 않다고 투덜대기 시작을 하고 자신의 뜻을 찾아 하느님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때로는 우리 이성의 범위를 초월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개미가 눈 앞의 현실에서만 사물을 인지하는데 우리가 위에서 보기에는 다른 더 좋고 유익한 길이 있고 그 개미에게 이리 저리 가도록 길을 지시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보다 넓고 무한하신 시선 속에서 당신은 우리의 삶을 이리로 또 저리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우리의 의지는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의지를 기꺼이 존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기쁨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봉헌하여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늘 투덜거리면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 적합한 위치에서 우리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뜻을 바로 세우십시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서 걸어 나갑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고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이에게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