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2주 화요일)
주인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은 결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이 구절은 자칫 많이들 곡해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진정한 주도권을 지니고 있는지
교회 안에서 많이들 다투고 있고 많이들 오해합니다.
한동안 그 주도권이 '사제들' 즉 교회권력에 주어져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배웠고,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이 주도권을 얼마든지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 즉 남미의 선교지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이 알고 많이 가진 북미와 유럽에서 온 사제들에게 굴종합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은 다만 그들이 일찍부터 얻은 좋은 기회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조금씩 예전의 그 막연한 존경과 존중을 그만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 간의 본전 생각에 반대 방향의 움직임을 내세웁니다.
즉, 교회 권력의 반대방향에 놓인 것으로 보이는 민초들인 '평신도',
실은 '평신도'에게 주도권이 있었다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대의 정의로움인 '민주주의'와도 맞물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정당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이 아닌 교회의 진정한 권력과 주도권은
교회권력도, 평신도도 아닌,
'하느님'에게 있습니다.
교회는 독재체제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하느님주의'('주의'라는 말마디를 쓰는 자체가 꺼림칙하지만…)입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
그분이야말로 모든 것을 올바르게 분별하시고 가르치시는 분,
교회 권력이 제 아무리 높아도 그분이 가장 약한 이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일을 시작하시면
그깟 권력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욕스러움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려 해도
당신이 뜻을 품고 한 인간을 통해서 교회의 방향을 정하면
그 수많은 사람들도 한 떨기 풀꽃처럼 스러져 갑니다.
제 아무리 강력한 교회 권력도
성령의 힘을 입은 한 사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군중이 분주히 설쳐대어 보았자,
하느님의 사랑을 품은 한 사람이 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의 아들을 좌우해서는 아니됩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하셨고,
교회의 모든 법규는 이 '사랑'에 근거해야 합니다.
'법규'를 위해서 '사랑'을 희생시키려는 시도가 일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길을 잘못 들어선 셈이 됩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하느님이 있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십시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하는 제 아무리 고상하고 거룩해 보이는 일도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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