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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술(심도)


이번엔 '심도'에 대해서 조금만 알아보자.

1) 피사체와 렌즈의 거리
우리 주변에서 심도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 팔을 최대한 뻗쳐서 검지손가락이 닿는 거리(1미터 정도)의 물건에
눈의 초점을 맞추어 보시라,
그러면 '포커스'(초점)가 그 사물에 맞춰지게 된다.
그리고나서는 그 검지 손가락을 일순간 눈 가까이 1cm 앞으로 가져오시라
그러면 손가락이 흐릿해 보일 것이다.
그럼 손가락이 '아웃포커스'(out of focus: 초점에서 벗어남)이 된 셈이다.
이 때에 여전히 촛점을 맞춘 그 사물을 바라보면서
다시 손가락을 점점 그 사물 가까이로 가져가다보면
손가락의 흐릿함이 점점 줄어들다가 그 사물 근처에 거의 다가갔을 무렵,
하지만 그 사물의 거리가 아직 몇 센티 정도 남았고 완전히 똑같아지지는 않았을 그 무렵에
이미 그 사물과 손가락 둘 다가 어느정도 뚜렷하게 보이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이 우리 눈의 정밀도가 구분해 낼 수 있는 허용범위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심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이폰4를 가지신 분들은 그 화면의 픽셀을 거의 구분해 낼 수 없다. 그래서 아이폰4의 디스플레이를 '레티나' 즉 망막 디스플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화면은 작은 사각형들이 잔뜩 쌓여있다. 아이폰 3GS 이전 버전을 보면 그 사각형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레티나 이상의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건 우리 눈으로서는 무의미한 일이 된다. 하지만 행여 나중에라도 만들게 되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에 우리의 눈은 아이폰4나 그보다 더 작은 픽셀을 표현해 내는 디스플레이나 똑같이 인식하게 된다.)

자 이제 내 손목을 잘라서(헉?!!!) 그 손가락을 뒤로 물리기 시작해보자.
이제 눈으로 보기에 손가락과 그 주변 사물이 같이 또렸하게 보일 수 있는 거리, 즉 심도는
눈에서 손가락이 멀어질수록 더 간극이 커지게 된다.
반대로 손가락을 눈 가까이 가져올수록 이 간격은 좁아지게 되고,
내 눈 최대한 가까이 사물을 선명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거리에서는
다른 물건들이 지극히 작은 거리만 물러서도 손가락과 그 물건 둘 중 하나는 흐릿하게 보이게 된다.

자, 그럼 심도(초점 허용 범위)에 영향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하나 배운 셈이다.
그것은 바로 렌즈와 사진이 찍힐 대상(피사체)의 거리가 된다.
그래서 그 어떤 사진기(똑딱이, 디카, DSLR…)라 할지라도
일단 가까이 있는 사물들을 찍게 되면 심도가 얕은 사진(아웃포커스가 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서라도 지극히 짧은 거리의 사물들에 촛점을 맞추면
뒤에 보이는 배경이 흐릿하게 변하게 된다(직접 해 보시라).

2) 렌즈 구경의 변화
이번에는 조리개를 이용한 심도의 변화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최근 나오는 카메라에는 폰카를 벗어난 기본적인 디카라도
AV또는 A(aperture: 벌어진 틈, 구멍, 구경)라는 모드가 존재한다.
이는 렌즈를 통해서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넓히고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상을 해 보면 된 것 같다.
호스를 하나 샀는데, 앞의 물이 나오는 구멍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 구멍이 가늘수록 섬세한 물줄기가 나오고
그 구멍이 클 수록 물이 콸콸콸 쏟아지는 셈이다.
그걸로 운동장에 그림을 그린다면
당연히 구멍이 가는 것으로 더 섬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결국 구멍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그 섬세함이 뛰어나게 되는 셈이다.

결국 구멍이 좁으면 자연 심도가 깊어진다.
즉 가까이 있는 사물이건 멀리 있는 사물이건 상관없이 모두 뚜렷하게 보이게 된다.
반대로 구멍이 넓을수록 심도는 촛점을 맞춘 사물에 한정되게 된다.
우리 눈에도 사실 같은 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눈에는 '홍채'라는 것이 있어서
영화에서 보면 의사들이 사람들이 죽었나 살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눈에다 후레시를 들고 빛을 쪼이게 된다.
그러면 빛이 많으면 홍채가 자동으로 반응해서 좁아지고 빛이 없으면 홍채가 넓어지게 된다.
따라서 밝은 곳으로 갈수록 우리 눈은 홍채가 닫혀 더 많은 사물을 뚜렷이 볼 수 있게 되고,
어두운 곳으로 갈수록 빛을 더 많이 흡수하기 위해 홍채가 열려
신경을 쓴 사물들만 겨우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에게서 저절로 일어나는 이 현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일상생활에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이다.

결국 아웃포커스 효과를 극대로 누리려면 조리개는 최대한 개방(조리개 수치가 작을수록 개방)을 해야 하고,
반대로 모든 사물을 선명히 찍기를 바란다면 조리개를 최대한 닫아야 한다.
그래서 인물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조리개를 개방해서 인물이 뚜렷이 살고
배경이 흐릿해지는 효과를 좋아하며,
배경 사진을 즐기는 사람은 모든 배경이 뚜렷이 나오도록 조리개를 최대한 닫고 사진을 찍는 게 일반이다.

3) 초점거리의 변화
자, 이 부분이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긴 하다.
렌즈에 보면 몇 미리, 몇 미리라고 적힌 렌즈들이 있다.
15mm에서 600mm에 해당하는 그 수치에 따라 광각에서 일반 나아가 망원으로 이어지는 별다른 명칭도 가지게 된다. 이건 과연 무슨 말일까?

다시 눈의 비유로 돌아오자.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여행을 갔다.
먼저는 소인국에 가서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데,
1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1미터 거리에서
1센티미터 크기의 구멍을 통해서 걸리버의 몸을 본다고 하자.
그들은 눈 앞의 걸리버를 우리가 창가에서 배경을 바라보듯이 두리번 버리며
마치 고질라나 킹콩의 거대한 몸을 보듯이 모든 것을 세세하게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걸리버가 한 사람당 키가 100미터인 거인나라에 도착을 해서
거인들이 다가와서 소인국과 같은 거리인 1미터에서
1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구멍으로 걸리버를 본다면,
그들은 마치 우리가 종이에 지극히 작은 구멍을 뚫어
그걸 통해서 눈 앞에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걸리버에게 촛점을 맞추려고 노력하면 마치 눈 앞의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처럼
다른 사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소인들의 눈은 작아서 지름이 얼마 되지 않고,
초점이 맺히는 거리(수정체에서 망막까지의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거인들의 눈은 거대해서 지름이 크고,
자연 초점이 맺히는 거리도 커지게 된다.

결국 지름이 얼마 되지 않는 작은 눈, 초점거리가 짧은 렌즈일수록 심도가 깊어지고,
같은 구멍(조리개)의 크기에 더 많은 범위의 상을 집어넣는가 하면,
지름이 긴 눈, 초점거리가 긴 렌즈일수록 심도는 자연히 깊어지게 되고,
같은 구멍(조리개)의 크기에 저 적은 범위의 상을 집어넣게 된다.

결국 초점거리가 짧을수록 더 많은 각도의 사물을 담아내는 광각렌즈가 되는 셈이고,
자연 아웃 포커싱 효과는 줄어들게 되며,
초점거리가 멀 수록 멀리 있는 사물을 당기는 망원렌즈가 되는 셈이이고,
자연 아웃 포커싱 효과가 드러나게 된다.

나아가 초점거리가 짧을수록 아웃포커싱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렌즈가 사정없이 커져야 하기에 자연 렌즈값이 치솟게 마련이고,
망원은 들어오는 빛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상이 어둡게 나오게 되고 그래서 더 밝은 렌즈가 필요해서 값이 치솟게 마련인 셈이다. 망원경은 고작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 두개면 구현이 가능하지만, 대신에 그 둘 사이가 멀어서 길쭉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걸 우리가 쓰는 줌렌즈는 그 길이를 단축 시키고자 그 안에 렌즈를 몇 개를 집어 넣으니 자연히 더욱 어둡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유리 한 장으로는 사물을 투명하게 보지만 유리를 10장을 겹친다고 상상해 보면 제 아무리 맑은 유리일지라도 빛을 덜 투과시키게 된다. 그래서 유리를 맑고 더 맑게 만드는 기술이 자연 망원렌즈의 값을 치솟게 만들고, 렌즈의 경통을 길게 빼고 렌즈의 구면(둥근면)을 더욱 정확히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기술과 물자가 들기에 이 또한 렌즈값 상승의 원인이 될 터이다.


심도 마무리

이 정도면 심도에 대한 이해가 대충 끝이 났다고 볼 수 있다.
조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심도가 깊은(모든 게 뚜렷이 보이는) 사진을 찍는 법,
멀리 있는 사물들(배경)을 찍어라, 조리개를 최대한 줄여라.
초점거리가 짧은 렌즈를 쓸수록 심도를 깊게 하는데는 유리하지만, 같은 화면에 담기는 상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고 소위 '어안렌즈' 즉 물고기의 툭 튀어나온 눈이 세상을 바라보듯이, 도로를 다니다가 커브길에서 만나게 되는 볼록거울에 비친 상처럼 상들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심도가 얕은(내가 원하는 대상 이외에는 흐리게 보이는) 사진을 찍는 법,
가까이 있는 사물들(카메라에 매크로라고 적힌 기능을 써라)을 찍어라, 조리개를 최대한 열어라.
초점거리가 긴 렌즈를 쓸수록 심도를 옅게, 아웃포커스 효과가 두드러지지만, 자연스레 줌(확대)가 되어버리게 되고 아웃포커스 효과를 주면서 같은 인물을 찍고 싶다면 뒤로 더욱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사물들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으면서 포커스 효과를 준 인물 사진을 얻는데는 효과적이기도 하다. 외국 여행을 가서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파파라치처럼 담고 싶다면 줌 렌즈가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만큼 들어오는 빛의 양이 줄어들고 셔터 속도가 줄어드니 손을 조금만 떨게 되어도 번진 듯한 사진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인물 사진을 선호하는 사람들,
소위 스튜디오를 차리고 인물들의 사진들을 주로 찍는 사람들에게는
조리개 수치가 더 작은(즉 조리개가 더 많이 열리는) 렌즈와,
좋은 회사에서 나온 더 밝고 구경이 큰 렌즈, 밝은 조명,
그 조명을 최대한 활용할 밝은 배경이 있는 스튜디오가 필요한 법이다.
예를 들어서 찍으려는 대상이 어린 아기면,
아기는 사정없이 움직여대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더 많은 돈울 자연스레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처럼 사진을 그저 취미로 즐기는 이들은,
자기의 여유 수준에 맞는 카메라와 렌즈를 고를 수밖에 없고,
필요이상의 과도한 욕심(나도 저런 아웃포커스가 된 사진을 찍고싶어!!!!! 따위의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 스타일(배경 사진이나 현장 기록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에 따라서 전혀 그런 장비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심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다른 방법으로 그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아웃포커스의 효과를 노리는데 돈은 없을 경우에는 다음의 과정을 시도해 보시라.
1) 일반 똑딱이 줌기능 디카 구입(이때 줌은 디지털 줌이 아니라 광학 줌이어야 함, 다시말해 순수 렌즈로 구현된 줌이어야 함).
2) 줌 기능을 이용해서 최대한 당기기.
3) 찍으려는 대상을 화면 안에 담고 싶은 만큼 대상에서 점점 뒤로 물러나서 적절한 거리를 찾기.
4) 삼각대를 이용해서 카메라가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줌이 멀면 멀수록 셔터속도가 늦어지게 되어 있음).
5) 가능하다면 피사체 옆에서 원하는 조명을 쬐어준다면 더욱 효과적임(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장면에서 옆에 무슨 판때기를 들고 있는 사람 보셨을 듯, 그 사람은 간접 조명을 비춰서 피사체의 그림자를 없애기도 하고, 부족한 빛을 반사시켜서 피사체에 더하기도 하는 기능을 하는 사람임).
6) 셔터 속도가 느린 만큼 찍으려는 대상 역시도 움직이면 안됨.
이렇게 찍는다면 충분히 원하는 아웃포커스 효과를 얻으면서 대상을 찍을 수가 있다.
결국 이 과정을 삭제하고 편하게 아웃포커스를 하려니 비싼 장비에 비싼 렌즈가 필요한 셈이다.
결국 여러분이 좋은 렌즈나 장비에 지불하게 되는 돈은 앞서의 과정을 단축시키는 노동력을 장비를 통해서 구입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앞서의 노출에 대한 이해와 이 심도에 대한 이해만 어느정도 하고 있어도,
상황에 따라서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 밖에도 피사체의 배치나 사진사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구도,
소위 '어, 역광이다 자리 옮겨야겠다.'라는 표현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빛의 방향(렘브란트의 삼각형),
찍으려는 대상에 따라서 노출의 중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노출의 다양한 모드
(김광두 부제님이 댓글에 남겨주신 다분할, 평균, 스팟)
그리고 유리의 반사광을 없앤다든지(편광필터) 일정한 색을 강조 혹은 제거한다든지,
또는 지나치게 밝은 빛(태양을 정면으로 찍는다던가 셔터 속도를 일부러 늘려서 물의 흐름을 흐릿하게 표현하거나 시내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의도적으로 길게 빼는 등등…)을 의도적으로 감소시킨다든지 하는 효과를 주는 필터,
야튼 사진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가세요. ㅎㅎㅎ
마치 옛날 486컴퓨터로도 그 능력 범위 안에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해낸 사람들이 있음에도,
오늘날 무턱대고 좋은 장비만을 찾는 아이들이 기껏 한다는 게 '게임' 뿐인 것처럼,
사진은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 표현력이 훨씬 뛰어나긴 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의미로 훌륭한 사진들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으니
지금 가지고 계신 것들로 많이들 찍으시고, 좋은 결과물들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어느정도 실력이 쌓였을 때에 여유에 따라서 필요한 장비를 하나씩 구입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카메라 강좌는 여기서
끄~~~~~~~~~~읕!!!!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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