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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연중3주 금요일)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르는 것이 우리 안에 심겨진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본질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존재합니다.
해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앗을 뿌려야 하고,
햇볕을 쬐어 주어야 하며,
물을 주어야 합니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앗을 파내지 말아야 하고
그늘을 가리우지 말고
말라죽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을 뿌려야 합니다.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커 나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씀을 뿌리지 않는데도 말씀이 자라나 있기를 바라지는 않으시겠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던지, 읽던지,
하느님의 영으로 쓰여진 책을 읽던지 무슨 수를 내어야 합니다.
미사에 가도 말씀은 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새로 들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햇볕도 쬐어야 합니다.
태양은 실로 엄청난 빛입니다.
그 상당한 거리 때문에 우리에게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빛을 쬐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축복의 손길에 우리를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 강도와 형태야 어떠하든 하느님의 빛을 쬘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주로 하느님의 신비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것인데
간단하게 생각하시면 '기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도 주어야 합니다.
씨앗은 목을 축여야 합니다.
이 물은 생활의 '실천'을 대표합니다.
제 아무리 말씀을 듣고 제 아무리 기도에 헌신해도
그에 상응하는 생활의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씨앗은 죽어버리고 맙니다.

이 세 가지 '기본이 되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씨앗은 성장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릅니다.
결국 키우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행여 씨를 좀 뿌리고, 물을 좀 주고, 햇볕을 좀 쬐었다고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교만하기 시작한다면
하느님은 그 '교만의 해충'을 보시고
그 씨앗을 거두어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끊임없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로 말씀에게 은총의 빛을 내리며,
실천으로 물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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