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을 왔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핑계로 좀 쉬러 왔다.
신부가 피정 간다는 데 말릴 사람은 없으니까 ㅎㅎ
아침에 대리구장 신부님께 간단히 인사 드렸는데
'피정 갑니다'라고 하니 별 말씀 없으셨다.
뭐 피정이라는 말 뜻 자체는 조용한 곳으로 피해간다는 말이니까
그 말마디 자체의 의미는 제대로 챙기고 있는 듯...
그래도 이런 저런 물리적 소음이 끊기고 나니
나 자신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저녁도 먹지 않고 속을 좀 비우니
비로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방 안에 음식이 가득이다.
작은 과자 부스러기부터 시작해서
창문 밖에 '자연 냉동고'라며 주르륵 올려놓은 팩우유들
각종 차와 꿀까지...
배고픔과 싸우려고 왔는데
먹거리가 넘 많다.
결국 우유 한 팩이랑 가져다주신 귤을 몇 개 먹었다.
급하게 온다고 미처 여벌 속옷도 챙기지를 못했다.
외사촌 누나 수녀님이 옷을 세탁해 주겠다고 싹 다 가져가 버리고는
그 동안 잠시 입으라고 준 옷이...
수녀님들 회색 활동 수녀복 ㅋㅋㅋ
덩치에도 맞지 않는 그걸 껴입으려는데
신세가 좀 처량하기도 했다.
수녀님이 농담처럼 그랬다.
"이거 사진 찍어놔야 하는데...ㅎㅎ"
큰일나실 말씀을...
소화 데레사 성녀의 마지막 생의 기록인
'노란 수첩'을 읽었다.
데레사 성녀의 임종에 대한 기록을 읽을 무렵엔
나도 경건해지는 기분이었다.
책을 몇 권 들고 왔는데...
과연 피정 마칠 때까지 얼마나 읽으려는지 모르겠다.
수녀님이 내일부터 산을 좀 타자고 하신다.
내가 여기 올때부터
'나 좀 굶고 싶으니까 밥은 하루에 한 끼만 주세요.'라고 했더니
그것만으론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등산을 해야 한단다.
아... 나 완전 게으른데... -_-;;;
여기 머물고 계신 '아빠스' 신부님께서
미사는 어떻게? 라고 물으시길래...
'다 참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내일 주례를 서란다.
당신이 여기 18년 머물고 계시는데
수녀님들이 가끔은 '별식'을 드셔야 한단다. ㅎㅎ
복음을 잠시 읽어봤는데
너무 익숙한 거라 고민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잘 풀어서 설명해 줘야겠다.
이제 자야지...
내일 일찍 미사 드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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