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은 조금만 먹는다면 참 달콤하고 향기로운 좋은 것이다.
즉 사탕은 '절제'와 더불어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잡히지 못하고 쓸데없는 양분의 섭취로 결국 몸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이 '절제'가 없다.
아이들은 달라고 하고 또 달라고 떼를 쓴다.
우리의 영혼에게도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사탕이 있다.
그것은 물질적 축복일 수도 있고,
병의 치유이기도 하며,
영적 위안거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탕들 역시도 '절제'가 동반되지 않으면
균형잡히지 못하고 쓸데없는 위로의 섭취로 결국 영혼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적 사탕을 달라고 하고 또 달라고 떼를 쓴다.
사탕을 빼앗기던지,
아니면 사탄이 권한을 넘겨받아 주체할 수 없이 사탕의 향에 취하던지...
차라리 사탕을 빼앗기길 바란다.
그러면 적어도 주도권이 사탄에게 넘어가진 않으니까,
바라던 걸 지나치게 얻어서 완전히 엇나가 버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자라는 게 낫다.
말인즉슨 하느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는 부모는 자녀가 제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둘 것이다.
그래서 늘 세상 안에서 무언가 부족함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게 하느님의 사랑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을 못한 채로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벌이나 고통이라고 생각하고는
어떻게든 그 시련을 '회피'하려 하고 '도망'치려 한다.
아니,
그럴 때일수록 그걸 더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이 선사하시는 시련의 목적이다.
똥이 싫다고 피하는 사람은
또 언젠가는 다른 똥, 더 큰 똥을 만나게 된다.
중요한 건 똥을 피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우리 주변에는 똥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면 똥을 치워도 더 평온한 마음으로 치울 수 있고,
정 치우지 못할 때에는 살짜기 거리를 두고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사탕만 찾지 말자.
단맛이 사라지고 나면 입안에 찾아들 씁쓸함이 더욱 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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