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처럼 우리의 영성에도 심도가 있다.
처음 영성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좋지 않은 카메라처럼 심도가 깊다.
즉 초점 허용범위가 커서
영적으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일들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가 영성에 관심을 두고 조금 배우기 시작하면
좋지 않은 카메라에 좋은 렌즈를 쓴 것처럼 심도가 얕아지는 시기가 온다.
이는 '세심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이든 저든 마음에 걸리고 자신이 죄스럽게 느껴진다.
다음에 다가오는 단계는 다시 심도가 깊어지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 때에는 좋은 장비를 통해서 깊어지는 심도인지라
보다 풍부한 표현력과 해상력을 가지고 모든 걸 인지하고 받아들이면서 심도가 깊어진다.
마음 푸근히 타인의 허물을 알면서도 그 모든 이를 받아들이는 단계는 여기에서 온다.
그러다 마침내 다가올 것이 두 번째 심도가 얕아지는 시기이니,
이 단계에 이른 성인은 하루하루를 하느님을 기다리며 눈물로 보내지만,
사람들은 이 사람을 '성인' 취급하며 드높이려 든다.
사실 카메라와 우리의 영성은 적지않은 관계가 있다.
왜냐면 결국 영성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는가에 달렸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것에 대한 나의 감수성과 영적인 지식과 배경(카메라의 필름과 보디)과
그 빛을 투과시키는 나의 정화작업(카메라의 렌즈)에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렌즈가 아무리 좋아도 필름이 엉망이면 좋은 상이 나올 수 없다.
즉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제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나의 내면이 엉망이면 그 좋은 것들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영적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또 반대로,
필름이 아무리 좋아도 렌즈가 흐릿하면 좋은 상이 나올 수 없다.
즉, 내 안에 든 것이 아무리 감수성이 뛰어나고 영적인 바탕을 깔았다 해도
지금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적거나 전혀 엉뚱한 세상을 향한 방향의 것이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영적으로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면에서 우리는 노력하는 것이니,
1) 나쁜 렌즈와 나쁜 보디 및 필름(그만그만한 결과물)
2) 나쁜 렌즈와 좋은 보디 및 필름(개선되어가는 결과물)
3) 좋은 렌즈와 나쁜 보디 및 필름(개선되어가는 결과물)
4) 좋은 렌즈와 좋은 보디 및 필름(훌륭한 결과물)
의 이 4가지 구분에 따라서 개략적인 영성이 드러나게 된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진 않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략화 시켰을 뿐이다.
중간중간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개입과,
이웃들의 사랑, 혹은 그 반대의 여러 일들이
우리를 한 걸음 나아가게 했다가 다시 물러가게 하고,
물러가게 했다가 다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이든 저든 신경을 쓰는 사람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하느님도 그를 도와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하느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결과물을 지니고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가 하는 우리의 의지를 보시기 때문이다.
하루에 주님의 기도 100단을 바치는 사람이 99단을 바치면 -1% 영적으로 물러나는 것이지만,
하루에 죽어라 기도를 않던 사람이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0에서 100%로 나아가는 셈이다.
그러니 당신의 영적 길을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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