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1서 2장 15-17절)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게되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의 이탈입니다. 이에 세상을 좋아하는 우리는 그 깨달음을 얻는 즉시 반문하게 됩니다. "그럼 세상을 떠나라는 겐가? 그럼 세상은 도대체 왜 만들었데? 떠날려고 만들었나?" 하느님의 이 이탈의 요구에서 '논리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실패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논리성이라는 것 역시도 세상을 기준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논리'가 아니라 '신앙'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신앙은 우리의 이성에는 '암흑'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신앙은 직접적인 서술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흙장난을 하는 어린아이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지금 놀고있는 모래밭이 자신의 현실입니다. 모래들은 훌륭한 장난감이고 그 모래로 자기 손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경이로운 나머지 끊임없이 모래밭에서 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보다 더 상위의 현실, 집과 먹어야 할 밥과 갈아입어야 할 옷이 아이에게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걸 알기에 아이가 놀이를 그만두게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이에게 집과 밥과 옷 따위는 보다 수준 높은 차원의 것이 아니라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일일 뿐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옷을 더럽혀가며, 또 먹지도 못할 모래음식을 만들어가며, 편히 쉬지 못하는 순간적인 재미만을 제공하는 모래밭에서 놀고 싶어합니다. 아이에게는 모래밭이야말로 환상적인 현실, 직접 맞닥뜨리고 자기 손아귀에 놀아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에서 보다 높은 현실,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의 왕국의 백성이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전히 모래밭에서 놀고 있으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깨닫는 자들이 있어 이 여정을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 여정에 동참하기를 촉구합니다. 누군가는 아예 귀를 닫고 마음을 닫아버리고, 누군가는 귀는 열지만 실천이 굼뜨고, 누군가는 쓰러지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나친 걱정에 사로잡히는 이들을 위해서 군더더기를 붙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이탈하라는 말이 여러분 모두가 사제가 되고 수도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탈한다는 말은 같은 일을 다른 차원에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고기를 낚던 어부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던 택시 기사는 사람을 얻기 위해 일을 하며, 물건을 나르는 운송기사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르는 이가 되면 됩니다. 여러분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하시되 다만 다른 관점(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관점)에서 일을 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 중에 특별한 성소에 이끌려 사제와 수도자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이들을 굳이 막으려는 의도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진실하십시오.
다만 우리가 반드시 끊어야 하는 것들도 필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는 여러분의 눈이 열려감에 따라서 이루어질 일입니다. 이제 겨우 몸을 뒤집는 갓난 아기에게 의자 위로 뛰어 오르라고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요구에 불과합니다. 아이는 먼저 기어가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도 못해 마음을 끓이는 사람에게 세상 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는 가르침을 건네는 건 마찬가지로 '무리한' 부탁입니다. 제 글을 읽는 다양한 분들 가운데 이런 무리한 요구를 느끼시는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기도를 단 한 순간도 하지 않는 분들은 '성호경' 부터 시작하시고, 이미 꾸준한 기도를 하는 분들은 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갖는 순간 여러분 각자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여정에서 시련이 다가올 때에는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영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이들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유명하다는 사람이나 나름 학식이 뛰어나다는 사람보다는(자칫 이런 이들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진실하고 영적인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박한 사람이 좋습니다.
1) 우리는 세상 것들에서 이탈해야 한다.
2) 이 이탈은 단순한 사막에로의 고립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세상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3)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이 이탈을 이룰 수 있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습니까? 하느님의 뜻 안에서 미워하십시오."
"무언가를 욕심내고 싶습니까? 하느님의 뜻 안에서 욕심을 내십시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 여러분의 뜻을 포기하십시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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