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미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날입니다. 마치 우리의 명절날처럼 사람들은 이 날이 되면 반드시 성당에 와서 죽은 이들의 이름을 지향에 올립니다. 일년 내내 성당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이 날은 성당에 나오지요. 참으로 좋은 복음 선포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가 '죽음'이라는 아주 훌륭한 주제를 강론대에 올릴 수 있지요.
인간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하지만 탄생이 참으로 아름답게 꾸며지고 축복으로 가득하고 늘 기억하려고 애쓰는 반면, 죽음은 음침하고 어둡고 가리워지고 애써 잊으려고 듭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마치 죽음이 없는 듯이 살아가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발악을 합니다. 온갖 건강식품은 현세적 영생을 광고하고 모든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지요.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치 탄생이 우리 주변에서 늘 존재하고, 매년 우리가 생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죽음도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늘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엄연한 생의 현실인 죽음은 원래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잊으려는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움입니다. 기피하고 싶고 싫고 꺼려지는 대상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현세에서 즐길 것들이 많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아직 ‘생’의 미련이 대단한 이들이지요. 이들은 살아 있어야지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 더욱 ‘집착’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반면 죽음을 껴안는 사람은 죽음과 친숙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실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삶의 한 단계이지요. 그리고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껴안고 죽음과 친숙해지고 나면 이들은 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들은 순간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언제라도 찾아올 죽음을 향해서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살아있지만 죽은 이들과,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는 이들이 바로 이 죽음에 대한 태도로 양분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죽지 않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그 영원한 권능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감싸 안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상의 자녀들은 그런 하느님의 자녀들을 증오합니다. 자신들의 구미에 영 맞지 않고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증오와 시기에 사로잡혀 살아가지요.
죽음은 현실입니다. 조금만 시선을 넓게 바라보아도 그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게 될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찬 기쁨으로 가득차 있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죽습니다. 하지만 탄생이 참으로 아름답게 꾸며지고 축복으로 가득하고 늘 기억하려고 애쓰는 반면, 죽음은 음침하고 어둡고 가리워지고 애써 잊으려고 듭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마치 죽음이 없는 듯이 살아가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발악을 합니다. 온갖 건강식품은 현세적 영생을 광고하고 모든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그것을 실제로 이룰 수 있다고 착각하지요.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치 탄생이 우리 주변에서 늘 존재하고, 매년 우리가 생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죽음도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늘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엄연한 생의 현실인 죽음은 원래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잊으려는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움입니다. 기피하고 싶고 싫고 꺼려지는 대상이지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현세에서 즐길 것들이 많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아직 ‘생’의 미련이 대단한 이들이지요. 이들은 살아 있어야지 이러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에 더욱 ‘집착’합니다. 삶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반면 죽음을 껴안는 사람은 죽음과 친숙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실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것은 삶의 한 단계이지요. 그리고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껴안고 죽음과 친숙해지고 나면 이들은 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들은 순간을 즐길 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언제라도 찾아올 죽음을 향해서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살아있지만 죽은 이들과,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는 이들이 바로 이 죽음에 대한 태도로 양분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죽지 않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그 영원한 권능으로 사랑하는 자녀들을 감싸 안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상의 자녀들은 그런 하느님의 자녀들을 증오합니다. 자신들의 구미에 영 맞지 않고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증오와 시기에 사로잡혀 살아가지요.
죽음은 현실입니다. 조금만 시선을 넓게 바라보아도 그 현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반드시 찾아오게 될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찬 기쁨으로 가득차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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