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보좌 신부님들은 고민입니다. 누군가는 힘들다 하고 누군가는 나간다 하면서 교사들이 신부님에게 고민 거리를 던져주기 시작하지요. 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면 남는 사람은 고작 한두 명 뿐이게 되고 그럼 주일학교가 무너질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시켜 보겠노라고 열심히 힘들다는 교사들과 술을 퍼곤 하지요.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기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만큼 힘든 게 없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 걸까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보고자 교리교사를 하면 좋은 것들에 대해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을 끄는 방법 가운데에서 최고의 방법은 제 스스로 좋은 걸 알아서 찾아오게 만드는 게 최고니까요.
교리교사를 하면 얻게 되는 세상적으로 좋은 여러가지 것들, 잦은 피정과 연수의 기회, 잦은 술자리, 보좌 신부님과 가까이 지내는 것 등등은 일단 제외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보다 본질적인 부분으로 바로 파고들지요.
1) 직분의 중요성
신앙을 전해주는 직분은 예수님에게 참으로 사랑받는 직분입니다. 예수님부터도 고을과 고을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지요. 그러니 ‘교리교사’라는 직분은 세상적인 명예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진정으로 명예로운 직분인 셈입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값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것이지요.
2) 신앙 공동체의 참여
신앙 생활은 혼자 하지 못합니다.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은 신앙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홀로 하늘나라에 가는 일은 없습니다. 교리교사는 사제를 목자로 두고 교사들이 서로 모이는 교사 공동체, 그리고 나아가 교사 스스로 목자가 되어 아이들을 추스리는 각 교리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양측의 입장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게 되지요. 리더가 된다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을 양측으로 잘 이해하는 셈입니다. 보좌 신부에게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고 떼를 쓰면서 정작 아이들은 소홀히 하는 교사들, 또 반대로 아이들에게 집중을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신부님의 지도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 격차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되지요. 교리교사는 신앙 공동체의 적극적인 구성 요소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신앙
교리교사는 신앙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늘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지 않으려 해도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다보면 아이들이 질문을 하게 되고,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도 하게 됩니다. 왜 창조는 7일만에 이루어졌다고 가르치고 세상은 진화론을 가르치는가? 5000명을 먹이신 기적이 의미하는 건 뭔가? 등등을 스스로 고민하고 답을 찾다보면 스스로의 신앙이 부쩍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4) 도전
많은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너무 조용하게 이끌어 나가려고 하기에 그 어떤 도전거리도 직면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나 젊은 나이의 청년들은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로 너무나 바빠서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지요. 교리교사는 이러한 도전거리에 직면하게 됩니다. 신앙학교든, 무슨 행사든, 아니면 첫 수업이든 교리교사에게는 끊임없는 도전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걸 이겨내었을 때에는 엄청난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설령 주어진 사명에 실패 하더라도 그 실패의 리스크가 충분히 상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실패가 오히려 도움이 되지요.
술을 잔뜩 먹여서 교사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런 교사들은 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도리어 교사 공동체를 망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교사라면 위와 같은 매력 거리들에 스스로 찾아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보좌 신부님이나 수녀님, 혹은 주임 신부님이 조금은 응원해 줄 필요가 있고 용기를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지만 지나치게 세상적 이득을 강조해서 끌어모은 공동체는 생명력이 약한 것이 보통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서 교사들이 1년간 생활하면서 쌓인 불만들이 표출될 것이고 교리교사 직분을 포기하려는 이들이 속출할 것입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준비된 마음으로 교사들을 그 직분 자체의 매력으로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참 힘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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