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에페 4,1-3)
쌍둥이가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고 한솥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게임기를 누가 하느냐는 문제로 서로 싸웠습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신앙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일치는 어느 쪽입니까?
이렇게 극명한 예로 설명을 하면 우리는 참으로 잘 선택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안에서 사람들은 어설픈 일치를 해 놓고서는 그게 진정한 일치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같은 친구 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로, 같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늘 붙어다니던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저마다의 삶의 구역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부르짖던 일치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그건 거짓 일치였던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가 같은 성령을 받으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일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볼리비아에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선교 사제 신부님의 고충과 사람들을 복음화하려는 열망을 이해할 수 있고, 페루의 동료 사제가 겪는 힘겨운 일에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진정한 복음화의 열정으로 일하는 사제들과 깊은 일치를 나눌 수 있지요.
단순히 외적으로 공유하는 일치는 우리를 진정으로 묶어주지 못합니다.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는 궁극적인 참된 내적 일치, 성령의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쌍둥이가 있습니다. 같은 집에 살고 한솥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게임기를 누가 하느냐는 문제로 서로 싸웠습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신앙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일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일치는 어느 쪽입니까?
이렇게 극명한 예로 설명을 하면 우리는 참으로 잘 선택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안에서 사람들은 어설픈 일치를 해 놓고서는 그게 진정한 일치라고 합니다.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같은 친구 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로, 같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늘 붙어다니던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저마다의 삶의 구역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부르짖던 일치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그건 거짓 일치였던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가 같은 성령을 받으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일치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볼리비아에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선교 사제 신부님의 고충과 사람들을 복음화하려는 열망을 이해할 수 있고, 페루의 동료 사제가 겪는 힘겨운 일에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진정한 복음화의 열정으로 일하는 사제들과 깊은 일치를 나눌 수 있지요.
단순히 외적으로 공유하는 일치는 우리를 진정으로 묶어주지 못합니다. 겸손과 온유,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는 궁극적인 참된 내적 일치, 성령의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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