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편하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여러가지를 발명해 내었습니다. 고생스러움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참 좋은 일이지요. 인간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것 말입니다. 아무래도 손가락으로 뜨거운 국물을 떠먹는 것보다는 국자가 있는 게 나을 수 밖에요.
하지만 이런 편안함의 추구가 마땅히 견뎌야 할 것마저 침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이들은 직접 걷고 뛰고 놀고 체험해야 하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편하라고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다 보면 결국 인성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은 성경에서도 권하는 것입니다. 박해가 일어나면 가서 당하라고 하지 않고 도망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져야만 하는 십자가 마저도 내던지려고 하면 그건 도리어 역효과를 내는 것이지요.
마냥 편안한 신앙생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숨만 쉬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소변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예복은 입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편안함의 추구가 마땅히 견뎌야 할 것마저 침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됩니다. 아이들은 직접 걷고 뛰고 놀고 체험해야 하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편하라고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다 보면 결국 인성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은 성경에서도 권하는 것입니다. 박해가 일어나면 가서 당하라고 하지 않고 도망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져야만 하는 십자가 마저도 내던지려고 하면 그건 도리어 역효과를 내는 것이지요.
마냥 편안한 신앙생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숨만 쉬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래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소변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예복은 입는 수고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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