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사도가 가르치는 공동체의 개념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진정한 일치를 지향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치라는 개념에 대한 엉뚱한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짜장면과 짬뽕을 먹을 때에 우리는 일치를 이야기합니다. ‘통일’이라고 표현되는 한 메뉴로의 일치는 어찌보면 진정한 일치가 아니지요. 짜장면으로 통일을 해 버렸을 때에 짬뽕을 먹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 일치는 폭력일 뿐입니다.
진정한 일치는 근본방향의 일치를 말합니다. 짜장면이나 짬뽕이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음식을 즐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만일 이 근본적인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짜장을 먹든 짬뽕을 먹든, 심지어는 볶음밥을 먹든 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은 주어지는 것을 감사히 먹으며 서로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일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회의를 열고 찬반 토론을 하고 어느 음식이 더 나은가 우열을 가린 뒤에 하나의 음식으로 통일을 해서 정돈을 하는 것이지요.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하는 셈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의 바오로 사도의 구절을 잘 읽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에페2,14-16)
짜장면과 짬뽕을 먹을 때에 우리는 일치를 이야기합니다. ‘통일’이라고 표현되는 한 메뉴로의 일치는 어찌보면 진정한 일치가 아니지요. 짜장면으로 통일을 해 버렸을 때에 짬뽕을 먹고 싶었던 사람에게 그 일치는 폭력일 뿐입니다.
진정한 일치는 근본방향의 일치를 말합니다. 짜장면이나 짬뽕이냐가 아니라, 우리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음식을 즐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만일 이 근본적인 일치가 이루어진다면 짜장을 먹든 짬뽕을 먹든, 심지어는 볶음밥을 먹든 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은 주어지는 것을 감사히 먹으며 서로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일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회의를 열고 찬반 토론을 하고 어느 음식이 더 나은가 우열을 가린 뒤에 하나의 음식으로 통일을 해서 정돈을 하는 것이지요.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하는 셈입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의 바오로 사도의 구절을 잘 읽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에페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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