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이해를 다졌으면 실천해야 합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배움이 되고 맙니다. 의자 만드는 법을 배웠으면 실제로 의자를 만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자를 만들면서 손가락에 힘도 늘어가고 실제적인 지식들도 더욱 늘어가는 것이지요.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여러가지 실질적인 지식에 접근하는 수단이 굉장히 쉬워졌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저 성당에 나와서 신부님이 하는 강론, 때로는 지루한 강론을 들으면서도 소박한 신심과 인내를 다해서 앉아 머무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내면에 영적인 힘이 도리어 더욱 길러졌지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뭔가 조금만 자기 기준과 맞지 않아도 ‘저 신부는 쓸모없다’라고 주교님이 하셔야 할 일을 대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제를 찾아 영적 단물을 빨아 먹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장하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사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많이 갖춘다고 사람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인내와 고난 안에서 자신이 아는 바를 실천할 때에 사람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서 자신의 배경 지식을 단단하게 꾸미지만 실제로는 전혀 의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더 참을성이 없고,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말 많은 친구와 머물러서 진득하게 들을 줄도 알아야 하고, 설령 그가 엉뚱한 소리를 해도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악습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 악습을 두고 비난하고 힐책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 따스하게 안아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전공서적의 글씨를 읽을 줄 안다고 그 지식을 습득한 게 아닙니다. 그 지식을 실제적인 영역에서 쓸 줄 알아야 비로소 그 지식을 진정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여러가지 실질적인 지식에 접근하는 수단이 굉장히 쉬워졌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저 성당에 나와서 신부님이 하는 강론, 때로는 지루한 강론을 들으면서도 소박한 신심과 인내를 다해서 앉아 머무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내면에 영적인 힘이 도리어 더욱 길러졌지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뭔가 조금만 자기 기준과 맞지 않아도 ‘저 신부는 쓸모없다’라고 주교님이 하셔야 할 일을 대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제를 찾아 영적 단물을 빨아 먹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성장하느냐?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사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많이 갖춘다고 사람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인내와 고난 안에서 자신이 아는 바를 실천할 때에 사람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서 자신의 배경 지식을 단단하게 꾸미지만 실제로는 전혀 의롭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전 세대보다 오히려 더 참을성이 없고,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말 많은 친구와 머물러서 진득하게 들을 줄도 알아야 하고, 설령 그가 엉뚱한 소리를 해도 인내심을 갖고 경청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악습이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 악습을 두고 비난하고 힐책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 따스하게 안아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전공서적의 글씨를 읽을 줄 안다고 그 지식을 습득한 게 아닙니다. 그 지식을 실제적인 영역에서 쓸 줄 알아야 비로소 그 지식을 진정으로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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