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는 한 자매가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늘 평일미사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젊은 엄마입니다. 하지만 그 얼굴에 늘 서려 있는 어두움을 숨길 수는 없었지요. 그러더니 어제 목요일 저녁미사 이후에 저를 보고는 저와 시간날 때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장 오늘 오후로 약속을 잡았지요. 오늘 작은 여자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 왔습니다.
- 어서오세요.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 신부님, 제가 7년째 엄마를 안보고 살고 있어요.
-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딸이 싫다고 말했어요. 딸은 키워봐야 두통거리밖에 안된다고 하곤 했지요. 그래서 7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찾아가고 있어요.
- 그렇군요. 혹시 어머니가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여쭤 보셨나요?
- 아니요. 근데 제 친구가 과거는 잊고 앞을 바라보래요. 다른 한 신부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구요. 헌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사제로서 양심껏 조언해 드릴테니까 잘 들으세요. 먼저 뚜렷한 현실은 자매님이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있지만 실제 문제에서는 전혀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거예요. 왜냐면 그 문제가 계속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프니까 이렇게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맞지요?
- 네.
- 이 문제는 회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예요. 치유해야 하는 거지요. 헌데 자매님은 어머니와 진중하게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어요.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말을 할 줄 알고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있기 때문인데 자매님은 단지 어머니가 하는 말이 마음 아프다는 이유로 단순히 피하고 있는 거예요.
- …
-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상처를 치유해야지요. 자매님의 어머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예요. 세상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요. 오늘 마침 아기를 데려 오셨네요. 잘 보세요. 이 아기와 자매님의 관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지금 이 아기는 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지요. 그리고 자매님은 성인으로서 그 도움을 제공하고 있어요. 이 아기는 아직 너무 어려서 받을 줄만 알고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지만 자매님은 아이를 사랑해요. 하지만 훗날 이 관계가 역전될 거예요.
- ?
- 지금의 자매님의 건장한 신체는 늙어갈 것이고 정신도 깜빡 깜빡 하겠지요.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오류가 생겨날 거예요. 그럼 그 때에 자매님이 지금 어머니에게 한 일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자매님은 어머니를 7년 전에 떠나 버렸지요. 어머니가 하는 말마디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 아이는 그러지 않을까요? 과연 자매님이 나이가 들어 실수를 하고 오류를 만들 때에 과연 자매님을 올바로 섬기게 될까요? 아이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게 되어요. 그럼 이 아이도 자매님이 어머님에게 한 일을 똑같이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엄청나게 큰 거죠. 이제 자매님의 문제해결 방식의 오류를 이해할 수 있으신가요?
- 하지만 모두를 사랑할 순 없잖아요. 그릇된 생각을 지닌 사람마저도 사랑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 성경은 이렇게 가르쳐요. 부모를 섬기라고 말이지요. 부모를 섬긴다는 말은 부모가 모든 일을 똑바로 해서 섬기는 게 아니예요. 부모에게 오류가 있고 잘못이 있지만 그럼에도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하느님의 가르침이예요. 만일 예수님이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눈 밖에 다 났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더욱 사랑하셨죠. 그분은 아흔 아홉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신 분이시니까요. 우리는 그 사랑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이제라도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드리세요. 물론 그렇게 한다고 어머니가 확 바뀌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해요. 아마 7년이라는 시간은 자매님의 마음 속에도 앙심을 쌓아 놓았겠지만 어머니의 마음 속에도 앙심을 쌓아 놓았을 거예요. 어쩌면 예전보다 더 힘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화 드리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방문도 하세요. 그게 하느님께서 자매님에게 원하시는 모습이예요. 이게 사제로서 제가 드리는 조언이예요.
- 그럼 신부님 개인의 의견은 어떠한가요?
- 저요? 흠… 과연 제 어머니는 완벽할까요? 천만에요. 제 어머니도 오류가 많으세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사랑하죠. 이 말은 어머니가 늘 사랑스럽다는 말이 아니예요. 사랑이라는 건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의지적인 선택이지요. 저는 제 마음을 다해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거예요. 어머니에게 오류가 있어도, 잘못이 있어도 하느님께서 명하신 것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사랑하는거죠. 이게 제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예요.
- 네 신부님. 뭔가 머릿 속에서 명확해 진 것 같아요. 그럼 일단 전화부터 시작해 볼께요.
- 네, 그러세요.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매님은 돌아갔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