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7)
하느님이 영혼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이미 어디에 어떤 영혼을 보낼지 알고 계십니다. 그 영혼의 특성에 따라 보낼 곳에 상황에 가장 적합한 영혼을 보내는 것이지요. 이미 부모가 이러저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거기에 합당한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다들 그렇게 태어난 셈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느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가 빌게이츠가 되기를 바라셨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것이고 무리한 요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법적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고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과, 반대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초막 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분명 출발부터 불리한 게임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셨다면 그건 상황에 달린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아이들은 모든 상황에서 기쁨을 만들어 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 내고 주어진 상황에서 숨바꼭질, 고무줄, 비석맞추기, 땅따먹기 등등 온갖 것들을 개발해 내서는 실컷 놉니다. (물론 이는 오늘날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참된 행복을 만들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 셈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빈부 격차라던가 소위 문명화의 정도와는 별 관련성이 없는 공평한 가능성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한가를 두고 공평한 경쟁을 시작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분명 더 많이 받는 이들은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 사도를 더욱 당신 품 가까이 두신 것처럼, 우리 가운데에는 아주 특별한 달란트를 지니고 시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하느님은 그들에게 더 많이 요구하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받게 되는 내적 외적 모든 조건들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미 시골 사람들은 튀긴 엠빠나다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줄 아는 반면, 한국에서는 치즈 케잌에 최고급 코코아를 마시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기는 커녕 코코아 온도가 식었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생기는 통이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영혼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는 이미 어디에 어떤 영혼을 보낼지 알고 계십니다. 그 영혼의 특성에 따라 보낼 곳에 상황에 가장 적합한 영혼을 보내는 것이지요. 이미 부모가 이러저러한 특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거기에 합당한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다들 그렇게 태어난 셈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느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가 빌게이츠가 되기를 바라셨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것이고 무리한 요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법적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고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것과, 반대로 아프리카 오지에서 초막 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분명 출발부터 불리한 게임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셨다면 그건 상황에 달린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오. 아이들은 모든 상황에서 기쁨을 만들어 냅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 내고 주어진 상황에서 숨바꼭질, 고무줄, 비석맞추기, 땅따먹기 등등 온갖 것들을 개발해 내서는 실컷 놉니다. (물론 이는 오늘날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더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참된 행복을 만들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 셈입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여기에는 빈부 격차라던가 소위 문명화의 정도와는 별 관련성이 없는 공평한 가능성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한가를 두고 공평한 경쟁을 시작하는 셈이지요.
하지만 분명 더 많이 받는 이들은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 사도를 더욱 당신 품 가까이 두신 것처럼, 우리 가운데에는 아주 특별한 달란트를 지니고 시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하느님은 그들에게 더 많이 요구하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받게 되는 내적 외적 모든 조건들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미 시골 사람들은 튀긴 엠빠나다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줄 아는 반면, 한국에서는 치즈 케잌에 최고급 코코아를 마시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기는 커녕 코코아 온도가 식었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생기는 통이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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