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이 당신에게 기쁨을 준다면 즐기십시오.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고급 커피숍의 커피를 즐길만한 여유가 되지 않는다면 보통 커피숍의 커피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즐기려는 것이 고급 커피라면 돈이 모일 때까지 절제하고 참고 기다릴 줄도 아십시오. 그런 뒤에 더 큰 기쁨으로 그 고급 커피를 즐기십시오. 기다림은 당신의 내면의 가치를 키우고 당신을 더욱 지혜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고독을 즐긴다면 혼자 마셔도 좋고, 어울림을 즐긴다면 함께 마셔도 좋습니다. 억지로 함께 즐기려고 애를 쓰지도, 일부러 고독을 찾지도 마십시오. 하지만 때로는 다른 성향을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기도 하고, 고독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설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 스스로의 취향대로 즐기십시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이유는 없습니다. 여유가 되고 좋아한다면 크림도 넣으십시오. 하지만 커피는 원래부터 크림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커피가 싫다면 코코아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물 한 잔을 마시면서도 그것을 즐길 줄 압니다. 물은 정말 목이 마를 때에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니까요. 커피 한 잔에서 우리의 삶을 즐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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