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 12,36)
하느님은 오십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니, 실은 늘 계시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훗날 당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숨쉬기에 감지하지 못합니다. 만일 입과 코를 틀어 막는다면 1분, 아니 30초만 지나도 공기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내가 숨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을 잃고서야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악은 우리에게서 하느님이라는 공기를 틀어막는 행위입니다. 단순히 계명을 어기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죄인일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으니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이렇게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이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이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시면 우리의 이런 모습에 감격해 하실 것입니다. 아니 그분은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시니, 우리가 하느님을 기다릴 마음 채비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감격하고 계실 것입니다. 기다리는 이들은 상급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이 직접 서빙하실 것입니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하느님은 오십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니, 실은 늘 계시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훗날 당신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숨쉬기에 감지하지 못합니다. 만일 입과 코를 틀어 막는다면 1분, 아니 30초만 지나도 공기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내가 숨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느님을 잃고서야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악은 우리에게서 하느님이라는 공기를 틀어막는 행위입니다. 단순히 계명을 어기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죄인일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셨으니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를 이렇게 바라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이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는 것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이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시면 우리의 이런 모습에 감격해 하실 것입니다. 아니 그분은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시니, 우리가 하느님을 기다릴 마음 채비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감격하고 계실 것입니다. 기다리는 이들은 상급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이 직접 서빙하실 것입니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