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 그게 신앙인이 할 일이다. 즉, 신앙인은 보이지 않는 영원의 실체를 실제 생활로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이웃의 구체적 삶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그들이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인가? 우리가 지닌 화려함으로 그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가톨릭의 외적 양상, 진중한 모습, 거대한 성전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는 것들이다. 큰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나 거대한 궁에 들어가는 것이나 사실 별 차이는 없는 셈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방법에서 벗어난 일을 할 때이다. 미친 사람이 되자는 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짝 미쳐 보이는 게 그리스도인이다. 즉, 세상이 열심히 돈을 벌자고 할 때에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하고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는 모습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다. 미치지 않고서는 말이다. 머리에 꽃을 달고 머리카락을 배배꼬지 않고서는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모습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때로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유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의 이유는 그들의 이유를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이해할 만한 선에서 일하려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초월성을 가리게 되고, 결국 그들에게 우리를 만만하게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원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 그들이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인가? 우리가 지닌 화려함으로 그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가톨릭의 외적 양상, 진중한 모습, 거대한 성전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는 것들이다. 큰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나 거대한 궁에 들어가는 것이나 사실 별 차이는 없는 셈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방법에서 벗어난 일을 할 때이다. 미친 사람이 되자는 건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짝 미쳐 보이는 게 그리스도인이다. 즉, 세상이 열심히 돈을 벌자고 할 때에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하고 실제로 그것을 추구하는 모습과 같은 종류의 것들이다. 그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다. 미치지 않고서는 말이다. 머리에 꽃을 달고 머리카락을 배배꼬지 않고서는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모습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때로 과감하게 실천하는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유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의 이유는 그들의 이유를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이해할 만한 선에서 일하려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초월성을 가리게 되고, 결국 그들에게 우리를 만만하게 보이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원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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