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먼저 기억하는 저의 신앙은 다름 아닌 부모님의 신앙이었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집안에 있는 성물들에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사리오 묵주에 있는 십자고상의 그 정밀함을 유심히 관찰하는 정도의 관심이었지요. 정작 거기에 매달려 있는 분에 대해서는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이라는 곳에서는 뭔가 엄숙한 느낌을 받았지요. 아마 인지력이 갓 생겨난 아이에게 다가온 첫 거룩함의 체험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던 시기에 삼위일체를 비유를 들어가며 열심히 가르치던 교리교사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래도 어떻게든 알려 주려고 노력하셨던 모습이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체에 관해서 설명하면서 직접 제병을 들고 와서는 제병을 낼름낼름 집어먹던 신부님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우리로서는 그거 하나 먹으려고 난리였는데 신부님은 마치 과자 먹듯이 제병을 먹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복사단을 열심히 하면서 규율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형과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새벽미사에 복사 서러 나가던 기억이 납니다. 추운 날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맡은 책임을 다하려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성당은 나의 놀이공간이었습니다. 물론 학교에도 친구가 있었지만 성당에도 친구가 있었지요. 구미에 살다가 대구로 이사를 와서는 더욱 성당에 마음을 두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당의 미사는 똑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저런 친구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서 성당을 딱 한번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부모님에게 엄청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성당을 중심으로 모든 교우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매주 주일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던 중에 성소모임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나가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신학교에 가보는 걸로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사실 그때는 크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걸 심각하게 고민하기에는 너무 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가 체험한 저의 신앙의 여정은 저만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살펴보면 몇 가지 다른 분들에게도 필요할만한 것들을 추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부모님의 신앙을 통한 영향
- 좋은 교리교사의 필요성
-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활환경 조성
저의 유소년기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신앙’이라는 것에 더욱 친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부모님이 계신다면 제가 뽑아놓은 사항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신앙을 지닌 부모님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자녀가 신앙을 배울 가능성은 존재하긴 하지만 많이 희박해지고 맙니다. 부모의 좋은 신앙은 자녀들에게 하나의 유산으로 물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리교사를 키우는 데에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좋은 교리교사가 나오려면 신부님과 수녀님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인 평신도들의 신앙적 바탕과 자발적 노력도 필요한 셈이지요. 교리교사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질 때에 열심히 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당신의 자녀들이 교리교사로 봉사한다고 할 때에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자가 많을 때에 그 가운데에서 좋은 교리교사도 나오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하겠지라고 기다리다보면 결국 ‘아무나’ 교리교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교사들이 보살핀 아이들이 훗날 교회의 평신도가 되는 셈이지요.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환경이라는 것은 언뜻 교회만 싸고 도는 열성파가 되는 것도 같지만 결국 해로울 건 없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보다는 교회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라도 더 듣게 마련이니까요. 연애를 해도 성당 안에서 하면 그나마 나은 셈입니다. 양심에 찔려서라도 엉뚱한 짓을 하기는 곤란할 테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많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자기 혼자 뚝 떨어져서 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교회는 결국 우리가 이루어낸 지금의 결과물인 셈이지요. 교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우리 각자의 동참으로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공동체입니다.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던 시기에 삼위일체를 비유를 들어가며 열심히 가르치던 교리교사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래도 어떻게든 알려 주려고 노력하셨던 모습이 기억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체에 관해서 설명하면서 직접 제병을 들고 와서는 제병을 낼름낼름 집어먹던 신부님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우리로서는 그거 하나 먹으려고 난리였는데 신부님은 마치 과자 먹듯이 제병을 먹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복사단을 열심히 하면서 규율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형과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새벽미사에 복사 서러 나가던 기억이 납니다. 추운 날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맡은 책임을 다하려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성당은 나의 놀이공간이었습니다. 물론 학교에도 친구가 있었지만 성당에도 친구가 있었지요. 구미에 살다가 대구로 이사를 와서는 더욱 성당에 마음을 두게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당의 미사는 똑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저런 친구들을 만났고 그러면서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어서 성당을 딱 한번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부모님에게 엄청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성당을 중심으로 모든 교우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학교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매주 주일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던 중에 성소모임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 나가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신학교에 가보는 걸로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사실 그때는 크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걸 심각하게 고민하기에는 너무 철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제가 체험한 저의 신앙의 여정은 저만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살펴보면 몇 가지 다른 분들에게도 필요할만한 것들을 추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부모님의 신앙을 통한 영향
- 좋은 교리교사의 필요성
- 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활환경 조성
저의 유소년기는 바로 이러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신앙’이라는 것에 더욱 친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은 부모님이 계신다면 제가 뽑아놓은 사항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신앙을 지닌 부모님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자녀가 신앙을 배울 가능성은 존재하긴 하지만 많이 희박해지고 맙니다. 부모의 좋은 신앙은 자녀들에게 하나의 유산으로 물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리교사를 키우는 데에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좋은 교리교사가 나오려면 신부님과 수녀님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인 평신도들의 신앙적 바탕과 자발적 노력도 필요한 셈이지요. 교리교사로 봉사할 기회가 주어질 때에 열심히 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당신의 자녀들이 교리교사로 봉사한다고 할 때에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지원자가 많을 때에 그 가운데에서 좋은 교리교사도 나오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하겠지라고 기다리다보면 결국 ‘아무나’ 교리교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교사들이 보살핀 아이들이 훗날 교회의 평신도가 되는 셈이지요.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환경이라는 것은 언뜻 교회만 싸고 도는 열성파가 되는 것도 같지만 결국 해로울 건 없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세상에서보다는 교회 안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라도 더 듣게 마련이니까요. 연애를 해도 성당 안에서 하면 그나마 나은 셈입니다. 양심에 찔려서라도 엉뚱한 짓을 하기는 곤란할 테니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케이스도 많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자기 혼자 뚝 떨어져서 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교회는 결국 우리가 이루어낸 지금의 결과물인 셈이지요. 교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우리 각자의 동참으로 한 걸음씩 걸어나가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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