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히면 ‘대화’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대화의 자리에서 타인을 마주하고 상대하겠지만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설득당할 용의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모든 가능한 근거를 마련합니다. 특히 자신이 ‘해 보았다’고 하기 시작할 때에는 더는 할 말이 없는 것이지요.
일치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 중심주의’입니다. 이기주의라고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이 표현은 타인의 풍부한 생각과 여러가지 다양성을 흡수하는 것을 가로막지요. 그리고 이 두 강력한 생각이 부딪히기 시작하면 언제나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말은 이정도로 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 한 아이를 두고 선생님과 어머니가 면담을 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한 게 있어서 어머니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지요. 헌데 어머니로서는 아이는 자신의 자존심인 것입니다. 지금껏 아이를 아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한 게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충족시켜 왔던 것이지요. 공부 잘하는 XX아이 엄마, 말 잘 듣는 XX아이 엄마, 말썽 일으키지 않는 XX아이 엄마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엄마에게 아이는 그 아이의 인격 그대로의 아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악세사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헌데 선생님이 아이 때문에 학교에 어머니를 불렀으니 이미 이 어머니는 그 자체로 기분이 나쁜 것이지요.
둘이 서로 대화가 될 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보편적인 관점에서 아이가 보다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이 정신나간 선생이 멀쩡한 아이를 두고 바쁜 사람을 불러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사 건건 선생님이 하는 말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뿐입니다. 결국 선생님은 어머니의 상태를 깨닫고 설득을 포기하고 맙니다. 어머니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이 도와주려는 말들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테니까요.
어머니는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언뜻 아이의 화려한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 온 것이지요. 아이는 정작 숨막혀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어머니는 그걸 바라볼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숨막히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가 어머니 자신에게는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마냥 좋은 아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논하고 ‘사랑’을 언급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들의 하느님은 만들어진 하느님이며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오직 자신들만이 추구하는 사랑, 달리 말해서 자신이 완수하고 싶은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일치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 중심주의’입니다. 이기주의라고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는 이 표현은 타인의 풍부한 생각과 여러가지 다양성을 흡수하는 것을 가로막지요. 그리고 이 두 강력한 생각이 부딪히기 시작하면 언제나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말은 이정도로 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 한 아이를 두고 선생님과 어머니가 면담을 하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어딘가 이상한 게 있어서 어머니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지요. 헌데 어머니로서는 아이는 자신의 자존심인 것입니다. 지금껏 아이를 아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한 게 아니라 아이를 통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충족시켜 왔던 것이지요. 공부 잘하는 XX아이 엄마, 말 잘 듣는 XX아이 엄마, 말썽 일으키지 않는 XX아이 엄마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엄마에게 아이는 그 아이의 인격 그대로의 아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악세사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헌데 선생님이 아이 때문에 학교에 어머니를 불렀으니 이미 이 어머니는 그 자체로 기분이 나쁜 것이지요.
둘이 서로 대화가 될 리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보편적인 관점에서 아이가 보다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이 정신나간 선생이 멀쩡한 아이를 두고 바쁜 사람을 불러 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사 건건 선생님이 하는 말에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뿐입니다. 결국 선생님은 어머니의 상태를 깨닫고 설득을 포기하고 맙니다. 어머니가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이 도와주려는 말들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테니까요.
어머니는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언뜻 아이의 화려한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 온 것이지요. 아이는 정작 숨막혀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어머니는 그걸 바라볼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숨막히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이가 어머니 자신에게는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마냥 좋은 아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논하고 ‘사랑’을 언급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그들의 하느님은 만들어진 하느님이며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오직 자신들만이 추구하는 사랑, 달리 말해서 자신이 완수하고 싶은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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