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여호 24,15)
우리는 근본적인 선택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는 추상적인 사고로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 이런 저런 성사를 받는 것이 근본 선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사소한 행위들 안에서 진정한 선택이 드러납니다.
페이스북에 아무리 가난한 이를 돕자고 게시물을 공유한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보고는 애써 외면해버리고 만다면 그는 전혀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모임에 강사로 나가서 부부간에 서로 한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열심히 가르치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가 피곤해하는 게 멀쩡히 눈에 보이는데도 설거지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는 부부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우리의 선택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것인지 세상과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우리는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이미 삶으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이들을 두고는 ‘위선자’라고 표현하지요.
우리는 근본적인 선택을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는 추상적인 사고로 시작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 이런 저런 성사를 받는 것이 근본 선택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사소한 행위들 안에서 진정한 선택이 드러납니다.
페이스북에 아무리 가난한 이를 돕자고 게시물을 공유한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보고는 애써 외면해버리고 만다면 그는 전혀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모임에 강사로 나가서 부부간에 서로 한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열심히 가르치고는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가 피곤해하는 게 멀쩡히 눈에 보이는데도 설거지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는 부부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우리의 선택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것인지 세상과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우리는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이미 삶으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이들을 두고는 ‘위선자’라고 표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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